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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열
사랑과 분노는 잠시간 내가 나 아닌 것으로 만드는 강렬한 감정이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과거의 나는 분기탱천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익명이니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보며 ‘왜 화를 내고 그러지? 차분하게 대화로 풀면 되는데 말이야… 밥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는데 말이야…’ 하고 빈곤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불난 집에 서큘레이터 돌리는 소릴 하곤 했다 (물론 화난 사람은 무서우니까 마음속으로 했다). 분노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가을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사랑하는 사람은 불을 가지고 왔다. 프로메테우스처럼. ‘오 이건 불이군… 따듯하군’ 하며 훈기를 느끼던 나는 이내 어떤 사실을 깨우쳤다. 사실 사랑은 분노의 예열 이란 사실을. 사랑은 한없이 따듯해지고, 따뜻해지다 못해 뜨거움으로 가고 싶어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랑이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놓으면 ‘자 이만하면 됐군’ 하며 어디선가 거대한 손이 나타나 마음에 섭섭의 고구마를, 미움의 그라탕을, 질투의 칠면조를 턱턱 집어넣는다. 갈곳없는 열기는 계속 뜨거워지니까 나는 열심히 그것들을 익히는 수밖에 없다. 그럴때마다 머리가 화끝까지 났다 (너무 화가나면 말도 제대로 안나오는 법이다). 별것도 아닌거에 화난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화가났다. 분노의 지속가능성을 실천했다.
인간의 좋은점은 뭐든 꾸준히 하다보면 금새 능숙해진다는 사실이다. 사랑이 분노의 예열이란 사실을 알게된지도 벌써 몇년이나 흘렀으니 꽤 익숙해졌다. 분노는 이런저런 유용함이 있었다. 분노는 감정편식이 심했던 내게 많은것을 골고루 먹였다. 뭐든 바싹 구우면 먹을만한 법이다. 그렇게 섭섭함이나 치사함을 구워먹다 보니 이전보다 덜 편협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제 어떤 분노는 사랑이 예열한 분노임을 이해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튼튼해진 것같은 기분이 든다. 훈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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