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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독서의 세계로 처음 이끌어준 책은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이다. 알코올 중독자와 동성애자가 각자 필요에 의해 위장결혼을 한 후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다. 일본 소설 특유의 느낌으로 아주 잔잔하고 밋밋하게 전개되지만 처음으로 나에게 이상한 울림을 주었었다.
독서를 하다 보면 책장을 덮은 후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끼는 소설을 가끔 만나게 된다. 그런 책들은 그 어떤 것에서도 느끼지 못한 이상한 울림을 나에게 주며, 그 아득함을 사랑하는 나는 계속해서 소설을 읽는다.
그런 소설들을 읽다보면 뇌가 눈의 속도를 못 따라갈 때도 가끔 있다. 그러면 나는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나의 뇌가 아직도 윗부분을 해석하고 있는데 눈은 저 밑을 혼자서 달리고 있다. 이런 별개의 시간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감각과 지각이 별개의 활동이라서 눈에 각인된 글씨들이 형태로서 등록되어야 뇌가 그 형태를 의미 있는 지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혼자만의 긴박하게 숨 막히는 독서를 하면, 내 마음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정화작용을 스스로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근래에 읽은 소설 중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가 그러했다. 한 인간의 삶과 외로움이 마지막에 이르러 나에게 오열을 안겼다. 나는 혼자됨이 두려운 걸까?
또 어떤 책이 있을까.
10대, 20대, 30대.... 내가 살아온 모든 세대마다 읽은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특이한 것은 나의 세대마다 나의 시선이 머문 주인공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로테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안쓰럽기 그지없게 된다.
사실 책 이야기만 주절대는 이유는 나는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쓰고는 싶은데 무얼 쓰고 싶은지는 나도 알지 못하는 상태다. 이번 주제가 사랑이라서 신청한 것일 수도 있다. 내 안에 정리되지 못한 사랑이 존재하니까. 나는 무엇을 정리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귓전에 서늘하게 붙어 다니는 지나간 사랑의 망령을 천국으로 인도하고 싶다.
제발 잘 가.
여담으로 제일 강력한 아득함을 준 소설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다.
(5.2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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