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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

밤의 버스에서 내려 도로 밤의 버스정류장에서. 생각해 보니 나는 누구더러 들으라고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다. 나는 밤의 버스정류장에서 노래를 부르네. 나 좋아지라고. 가사야 틀리든 말든 음정이고 박자고 따질 필요도 없이. 밤의 버스정류장을 더없이 사랑하는 까닭은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저 나 혼자 있으니까. 나만 있어도 되니까. 거기서 우두커니 온몸에 묻은 타인에 대한 감정을 반응을 감각을 지워낸다. 마치 샤워를 하듯이 쏟아지는 물줄기의 역할을 흥얼거리곤 하는 노래에 맡기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오기에 대한 얄미움도 지워지고 '오뚜-기 삼분요^리'를 '오뚜-기 삼분카^레'하고 불러도 아무 상관이 없는 기분이다. 아니, 상관이 없다. 외려 더 박력 있고 좋지 않은가. '레!'하고 똑 떨어지게, 오뚜기 삼분카레! 이제 더는 기다릴 것도 없는 한밤의 버스정류장에서 가만히 서서 나는 또 내 멋대로 '오뚜-기 삼분카^레' '한 걸음 뒤에 항상 니가 있었는데 음음-'노래를 부른다. 누가 듣든 말든. 그러다 잠깐, 나 누구에게 한번 노래를 불러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가사를 보면서 노래를 불러주었지. 술에 취해서. 그런 기억이 떠올라 다시 한번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오래전 일이다. 그때의 사정과 사람을 더듬대다 자리에 앉아 그만 울고 싶어졌다. 아이처럼 엉엉.

유희경, 『나와 오기』, 9월 14일 中,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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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난다라는 출판사에서 한 달에 한 권씩 책이 나왔다.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 내려 나가는 열두 권의 책. 시의적절 시리즈. 열두 달 중 『나와 오기』는 그중 9월을 맡고 있으며 유희경이 시인이 써 내려 갔다. 올해 읽은 책 중에 딱 한 권만 짚자면 난 이 책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탄탄한 구성과 긴장감, 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때 느껴지는 묘한 찌릿함을 뒷받침하는 유희경 시인 특유의 '위트 앤 시니컬'한 문장들. 도대체 이 글의 힘은 어디에서 솟아 나오는 건지 알고 싶었다. 찾아보니 그가 어느 매체에서 얘기하기를, 그가 운영하는 서점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매일 올리는 글이 그 힘이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그렇지. 그는 매일 쓰는 사람이었지.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이라고 탓하지만, 실은 그 게으름조차 글 쓰고 난 뒤에 느끼는 게으름이겠지.
글을 통해 '나'를 밀어내는 방식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여긴다. 유희경 시인처럼 시를 통해 자신을 밀어낼 수도, 그러나 밀어낸 뒤에는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고 일컬을 수도 있다. 모든 좋은 글이 문학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느낀 좋은 글이란 대부분 문학에서 느낀 글들이었다.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 사람을 뒤바꿀 순 없고, 세계를 뒤엎을 수도 없다. '도끼'까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하는 글들. 아주 조금 자신이 살아오고 있던 궤도를 비트는 글. 그래서 영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체감하고, 지나온 세월에 깃든 후회나 원망이나 여러 감정의 소용돌이들을 욱여넣고 끝내 다음을 이야기하게 만드는 글. 가 보고 싶다.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이제 글이 1을 차지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렇지 않더라도 쓰고 싶은 글이 있고. 그걸 썼으면 좋겠다. 내가.

(7.9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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