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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책의 8할은 영문학이다. 한동안 제일 좋아하던 책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 아서 밀러의 ‘시련’. 그런데 번역가의 재량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도 있는 게 영미 문학이다. 번역이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작가의 고유한 문체와 스타일이 완벽하게 전달되긴 어려울 것이다. 원서를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이 베스트겠지만 그 정도의 영어 실력까지 갖추지 못했다. 그래도 현재의 나를 만든 많은 책들이 영미문학에서 비롯된 것을 보면, 번역된 글로도 나는 충분히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게 분명하다.

글을 읽을 때 나에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가 전하려 하는 메시지다. 어떤 메시지를 담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드는지.
언어 장벽으로 인해 특정 작가의 문체나 글의 세부적인 특징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한국 작가가 노벨상을 받은 것이 이례적인 일이라는 점도 그런 맥락에서 통한다. 작품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을 때 그 정서 그대로 전달되기가 쉽지 않다. 이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해질 수 있었던 진한 울림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나를 되돌아 보게 되었다. 나는 타인의 껍데기를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인가? 나는 껍데기를 들춰냈을 때 실한 알맹이가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저 공갈 빵인가?

나는 알맹이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 화려하지 않다면 투박한 그대로를 드러내고 싶다. 좋은 글은 스스로 껍데기를 벗겨내 자신의 알맹이를 드러내 기꺼이 보여주는 글이다. 글을 쓰며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다. 떳떳한 글은 자신의 알맹이와 마주한 글이다.

아직 알맹이가 실한 것 같지 않다.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열매다. 그래서 더 읽고, 다른 알맹이들을 탐구해볼 계획이다.

(4.4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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