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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한다. 그때 그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면. 그 선생님께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떤 어른이 됐을까. 선생님은 내가 사유하는 성인으로 성장하게 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행위가 아니다. 한 인간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 쉽게 들지 않는 마음, '다정'을 기반으로 한다. 다정은 인간을 구한다. 그러니 다정은 좋은 것이다. 좋은 것은 다정한 것이다.

그래서 내게 좋은 글은 다정한 글이다. 다정한 글은 세상을 따뜻하게 한다. 가끔은 논리로 잘 짜인 글보다 마음을 울리는 글이 와닿는다. 이 삭막한 세상에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그런 글이 논리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쉽게 찾아보긴 쉽지 않지만, 있긴 하다. 바로 신형철의 글이다.

"한 인간이 어떤 과거에 대해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어버리는 이런 고통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당사자가 아닌 이들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상상해야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대상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中)

희로애락(喜怒哀樂). 이 중 무엇 하나라도 빠지면 인간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런데 기쁨보단 슬픔이, 즐거움보단 노여움이 오래 남는다. 때론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야속한 법칙이다. 그런 인간이 타인의 고통엔 무심하다. 그 세계에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외면하고 싶지만 불편한 사실이다. 그래서 문학이 필요하다. 시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평론이든. 문학은 타자의 감정을 이해하게 한다. 연대하게 만든다.

신형철의 글이 특히 그렇다. 대단한 자료와 수치를 넣지 않았는데 설득된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이 단단하다. 동시에 따뜻하다. 강한 것은 아름답고 약한 것은 추하다고 하는 세상. 신자유주의자들의 약육강식 논리가 난무한 세계에 칼을 든다. 그 칼은 펜이다. 그리고 쓴다. 깊이 있는 지식을 더해. 유약함은 패배가 아니라고. 다정과 논리를 모두 갖췄다.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텍스트고 신형철의 글이다. 냉소적인 나도, 이제 그런 글을 쓰며 세상에 온기를 더하고 싶다.

(5.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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