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목적지
곱게 미친다는 것은 뭘까. 처음 김승옥의 문장을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이 선하다.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지 기쁜 것이든지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다.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넉이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 -서울 1984년 겨울-’
‘서울은 모든 욕망의 집결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서울 1984년 겨울-’
‘내가 왜 너희들을 만든 줄 아느냐? 하, 이놈들, 외로워서 그랬다… 그나저나 하여튼 미안하다. -환상수첩-’
같은 문장은 그 세련됨과 솔직함과 유머러스함이 지금 곱씹어도 탁월하다.
김승옥 문장의 탁월함은 자신이 아니꼬워하는 인간이나 현상을 묘사할 때 빛을 발한다. 예를 들면,
‘예링의 절규가 어디서 나온 것인 줄도 모르고 그 절규의 메아리만 배워서 실천하려고 드는 무리들. 그러나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생명연습-’
‘문화부장은 마치 아주 무식한 사람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이쪽을 무식한 자로 취급하고 나서 자기가 이 무식한 자의 수준만큼 내려가 주겠다는 의도임이 틀림없다 -차나 한 잔-’
이렇게 기민한 감수성과 조소에 능한 성정을 가졌다면 미치기 딱 좋다.
김승옥처럼 쓸 수 있다면… 아마도 분명 미칠 것이다.
김승옥은 일련의 역사적 비극(광주민주화 운동 등)을 겪고 한동안 거의 절필하다시피 글을 발표 않다가 말년에 어떤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는데, 그 체험을 갈무리한 간증 집을 기록해 책으로 엮었다.
‘1981년 4월 26일 새벽 하나님께서 내 영안을 여시고 그분의 하얀 손으로 내 명치를 어루만져 수시며 “누구냐?”라고 묻는 내 질문에 분명히 한국말로 “하느님이라고” 대답하시는 체험을 했다.-내가 만난 하나님-’
김승옥을 좋아한 이후로 김승옥 책이라면 족족 찾아 읽었기 때문에 이 책도 읽었는데…
분명 구르던 바닥이 있으니 분명 주어, 서술어, 목적어가 조응하는 흠이 없는 문장이었지만… 뭐랄까 뭔가가 없었다. 이 사람 미쳤다 싶은 엄청나게 매혹적인 맛이. 무언가가. 그런데도 미쳤다는 건 느껴졌다. 그것도 곱게.. 그 뒤로 김승옥은 소설가로써 완전히 절필했지만 안수도 받고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도 진학하고… 이따금 기독교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며 (대부분 마감기한을 지키지 못하고 하루나 이틀을 늦었다고 한다), 그렇게 미친것 치곤 비폭력적으로, 곱게 미친 채로 살았다.
여기서부턴 나의 가설이다. 그러니까 그날 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김승옥은 이런 시국에 자신의 처지와, 그로 인한 수치로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어떤 신적인 존재와 모종의 거래를 한 것이 아닐까. ‘너 미쳐도 곱게 미칠래 아니면 추하게 미칠래?’ 김승옥은 ‘기왕 미칠 거면 곱게 미치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렇게 말하자 그 존재는 이런 거래를 제안한 것이다. ‘그럼 너의 문장력을 내놔라’
김승옥은 마음의 평안과 문장력을 맞바꾼 것이 아닐까? 김승옥의 문장력 정도면 곱게 미침과 등가교환이 되고도 남긴 하다.
나는 곱게 미치기 위해 글을 쓴다. 좋은 글은 미운 걸 덮어놓고 미워하지 않으려고 용을 쓴 티가 나는 글이다. 나는 김승옥이 꼴사나운 인간들을 묘사할 때 그게 왜 미운지 골똘하고 용감하게 들여다봤다는 점이 멋지고 웃기다.
(7.9매)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