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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겨울은... ... 그래, 겨울도 중요하다. 겨울에 가뭄이 들거나 장마가 지면 여름이 엉망이 된다. 겨울인 지금 이불을 동그랗게 파고들어가 앉아 가장 기다리는 것은 7월이다. 수박을 먹기 위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동그랗게 앉아 커다란 수박을 갈라먹기 위해서. 수박은 혼자 먹으면 어쩐지 너무 고독한 느낌이다. 다른 과일은 무엇이든 혼자 먹어도 상관 없는데, 수박만은 혼자 먹고 싶지 않다. 눈 많이 내리는 겨울을 난 땅에서 자랄 가장 무늬가 선명하고 묵직한 수박을 그려본다. 내가 이렇게 큰 수박을 사 왔다며 생색도 낼 요량이다. 한겨울에 한여름의 한때를 과일로 나눌 일, 같이 먹을 입을 떠올리는 일. 나는 이런 게 즐겁다.
김복희, 《오늘부터 일일》, 12월 7일, 난다
정돈되었고 균형감이 잘 채워져있으며 구조적으로 탄탄한 글이 주는 힘은 대단하다. 안정적이며 반론의 여지를 달기 힘들어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다. 이런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하는 때가 분명히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실은 내가 좋아하는 글은 헛점이 있는 글이다. 헛점을 알고도 밀고 가는 글이다. 밀고 가면서 포옹하는 글이다.
이 글이 내게는 그랬다. 딱딱 맞아 떨어지거나 군더더기를 제기한 글이 아니라 어쩐지 헐거우면서 문장 사이사이를 잇는 긴장감도 풀어 놓은 글. 그러면서도 내보이는 마음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저리게 만드는 글. 이런 글...만 쓰고 싶진 않아도, 부정할 순 없다. 이런 글이 좋다. 끄덕거림 보다 포옹을 택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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