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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두 세계 혹은 반으로 나뉜 세계,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나의 문제가 모든 사람의 문제며 모든 삶과 생각의 문제라는 직감이 신성한 그림자처럼 문득 뇌리를 스쳤다. 나 자신의 개인적 삶과 생각이 위대한 사상의 영원한 흐름에 얼마나 깊이 동참하고 있는지를 갑자기 깨달았다. 그러자 불안과 경외심이 몰려왔다. 그런 깨달음은 무언가 긍정적이고 뿌듯한 느낌을 주었지만 반갑지는 않았다. 그것은 가혹하고 씁쓸했다. 책임을 져야 하고 더 이상 아이로 머물 수 없으며 혼자 힘으로 서야 한다는 의미가 깨달음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익숙해진 사회다. 모든 것을 네 편 내 편으로 만들어 싸우기 십상이다. 그런데 사실 세상은 둘로 쪼갤 수 있을 만큼 그리 단순하지 않다. 서로를 대척점에 두고 싸우기에는 우리는 닮은 점들이 너무 많다.
‘나의 문제가 모든 사람의 문제며 모든 삶과 생각의 문제’라는 문장은 큰 위로가 되었다. 뭐랄까, 오랜만에 본 따뜻한 문장이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사실 많이 닮아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따뜻한 글이 좋다. 읽을수록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글.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글이 좋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예리한 불꽃처럼 내 안에 타올랐다. 누구에게나 ‘과제’가 있지만 그 과제는 스스로 선택할 수도, 맘대로 결정해서 행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신들을 원하는 것도 잘못이었고, 세상에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도 완전히 잘못됐다! 깨우침을 얻은 인간에게 의무란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길이 이끄는 곳이면 어디든 그 길을 따라 앞으로 더듬어 나아가는 것뿐, 그 외에 다른 의무는 절대, 절대, 절대로 없었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데미안을 읽으며 나도 몰랐던 내 결핍을 발견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말하는 ‘과제’란 무엇일까? 그리고 내 '본연의 모습'은 무엇일까?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지 못했던 질문을 대신 해주는 것 같았다.
감이 잘 잡히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데미안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아직도 답은 잘 모르겠지만,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듯하다.
나에게 좋은 글은 좋은 질문을 던지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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