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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_ 크리스티앙 보뱅

현 시각 내가 제일 사랑하고 있는 작가는 크리스티앙 보뱅이다. 원래 시처럼 쓴 산문이나 시 같은 느낌을 주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보뱅의 글이 딱 그러하다. 할 수만 있다면 보뱅의 글을 모두 도둑질하고 싶다.
그중 읽고 또 읽은 한 부분을 골라 필사해 보겠다.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p. 76
당신은 금요일 저녁에 책을 읽기 시작해 일요일 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른다. 이제는 책에서 나와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려운 일이다. 무용한 독서에서 유용한 거짓으로 건너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작을 읽은 다음이면 어김없이 왠지 모를 불안과 불편한 감정에 빠진다. 누군가가 당신의 마음속을 읽을 것만 같다. 사랑하는 책이 당신의 얼굴을 투명하게 - 파렴치하게 만들어놓지는 않았는지. 그런 헐벗은 얼굴로는, 행복이 고스란히 드러난 얼굴을 하고서는 길에 나설 수 없다. 잠시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낱말들이 먼지처럼 햇빛 속에 흩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책을 읽은 뒤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두 문장 기억이 날까? 누군가 아이에게 성을 보여준다고 하자. 아이는 세부사항만 볼 것이다. 두 개의 돌 사이에 돋아난 풀 한 포기 정도. 마치 그 성이 발하는 진정한 힘이 광기에 찬한 포기 풀의 떨림에서 비롯된다는 듯이 말이다. 당신은 이런 아이와 흡사하다. 당신이 사랑하는 책들은 당신이 먹는 빵과 뒤섞인다. 그 책들은 스쳐 지나간 얼굴이나 맑고 투명한 가을 하루처럼 삶의 온갖 아름다움과 운명을 같이한다. 그것들은 의식으로 통하는 문을 알지 못한 채 몽상의 창을 통해 당신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당신 자신은 결코 가지 않는 깊숙한 외딴방까지 교묘히 스며든다. 몇 시간이고 책을 읽다 보면 영혼에 살며시 물이 든다. 당신 안에 존재하는 비가시적인 것에 작은 변화가 닥친다. 당신의 목소리와 눈빛이, 걸음걸이와 행동거지가 달라진다.

책 읽는 이의 아득한 감정과 독서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다니.. 정말이지 놀랍다. 나는 요즘 책 친구들을 만나면 크리스티앙 보뱅 읽어보았느냐고 꼭 물어본다.
산꼭대기에 올라가 동네 사람들~ 크리스티앙 보뱅 읽어봐요!!! 외치고 싶다.

(5.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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