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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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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방은 나를 가둘만큼 넓지 못해서 너의 방을 떠돌았다 (중략)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너는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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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호수에서 너를 찾았다 너는 없고 너의 표정만 갈라지고 있었다 목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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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복을 걸치고 건반을 두드리던 그와 나의 헐렁한 관계를 생각하는일
그는 식량을 사러 떠났고 날씨가
어떠냐고 오늘은 절망하기 좋으냐고 묻지도
못했다

송승언, 철과오크 중

이 작가의 시집과 문체를 정말 좋아하고 아낀다. 예쁘고 어려운 단어가 아니라 꼭 그 문장 그 위치에 필요했을 단어들을 사용한다. 문장의 길이는 내 호흡과 잘 맞아떨어진다. 밝은 분위기가 아닌 것도 마음에 든다. 절망스럽고 담백하게 모든 시를 전개해 나간다. 작가의 글은 머릿속에 이미지를 묘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마침표 없이 죽 이어지는 문장 덕에, 그것이 쌓여 시가 되었다기 보다 어떤 한 장면을 통째로 옮겨놓은 느낌이 든다. 거의 모든 기억이 이미지로 기억되는 나는, 너무 구체적이지 않게 내 마음을 시로 쓰고 싶었다. 그런 욕구와 나의 취향에 정확히 부합하는 시집을 발견한 것이다.

베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써뒀던 시 하나를 남긴다. (202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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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된 순간들이 있다 사정이 있다고 했다 조향사는 덤덤한 표정으로 감정을 섞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마음이 누락되는 생활을 원하지 않았다

그걸 아무도 모른다는 게 사실인가요
들은 사람이 없으니까요 유감스럽지만

(3.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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