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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길 지양하려 했다. 적어도 모각글에서는. 무거운 주제로 즐겁게 글 쓰는 이들을 피로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무거운 글이 먼저 떠오른다. 미리 양해를 구한다. 내가 좋아하는 글은 故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1978년에 나왔지만 익숙하다. 국민 소설로 불린다. 46년 전 글이 아직도 꾸준히 읽힌다는 건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구조적 문제 때문일 것이다.
조세희는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시절 하층민들의 애환을 그렸다. 1970년대 노동자 가족의 삶을 통해 가난과 불평등, 인간 소외의 문제를 생생히 담았다. 하지만 우린 칠십년대에서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했다. 혁명이 필요할 때 혁명을 겪지 못했다. 물론 바뀐 건 있다. 고층의 빌딩이 들어섰다. 영양 과잉의 시대다.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난다. 온갖 휘황찬란한 상점들이 거리를 장식한다. 교육에 대한 문턱이 낮아졌고 다들 대학에 간다. 그런데 사는 건 왜 이렇게 힘이 들까.
지난해엔 산재 사고에 대한 뉴스가 유난히 많았다. 떨어졌다. 끼였다. 깔렸다. 뒤집혔다. 노동 현장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이것은 모두 현재 진행형이지 소설이 아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식들은 최고급 차를 수집하고, 최고급 시계를 차고 다니고, 최고급 술을 마신다. 난장이들은 여전히 자라지 못했다. 오늘도 세 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내 또래의 난장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조세희의 글이 자꾸만 생각난다. ‘난쏘공’은 단문의 반복 사용, 시간 중첩, 환상적 상황 설정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입체적인 글로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천국을 바라지만 지옥 같은 현실을 살아야 하는 난장이들의 처지를 우리는 안다.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다. 적어도 나에겐 인간의 존엄을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살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달에 가 천문대 일을 보기로 했다. 내가 할 일은 망원렌즈를 지키는 일이야.” 소설에서 난장이는 달나라로의 여행을 꿈꾼다. 그러나 벽돌공장 굴뚝 속으로 떨어져 죽는다. 나는 조세희의 글을 읽기 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이젠 안다. 지금 당장 할 일은 난장이가 달나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일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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