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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한 무용수의 즉흥 앞에서 얼어버렸다.
내가 선 자세와 눈길까지 따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다 내가 쉰 숨을 그가 마셔버릴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호흡마저 가로채여는 걸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조금 돌아섰고, 그 움직임이 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소리 내어 읽을 때 빛나는 시가 있습니다.
소설과 희곡도 마찬가지죠.
사진은 소리를 품을 수 없다고 생각해왔어요.
하지만 그건 완벽히 틀린 생각입니다.
사진을 보면서 가만히 귀 기울여보시기를.

눈꺼풀이 깜박이는 소리, 창문 밖으로 차 지나가는 소리, 여린 콧바람의, 전류가 흐르는, 지구가 도는, 반달이 빛을 머금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사진과 나 사이에 세상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이죠.”

  • 속도를 가진 것들은 슬프다 中 -

오성은 작가의 사상이 좋다.
그의 세계에 들어가면, 하나의 이질감 없이 그의 사상을 맘껏 활보한다.
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풍요롭다.
내가 아는 재료들로 만들어진 짜릿하게 좋아하는 음식의 맛을 느낀다.

“무언가 갑자기 떠오른 사람처럼 한 사람이 자리를 떠났다 같은 생각을 떠올리지 않은 나는 자리를 지켰다 열두 번째 나무 아래 오래 서서 복숭아 열매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차오르는 생각 혹은 열매, 아무도 펜을 들고 있지 않았지만 복숭아 라이브 드로잉은 계속되었다 드로잉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러야만할 것 같았다 무해한 복숭아를 응원하기 위해 무럭무럭 차오르는, 물큰“

이는 이은규 시인의 글이다.
내게 익숙한 재료들 사이 생소한 킥이 담긴 퓨전 요리의 맛을 낸다.
눈을 감고 꼭꼭 씹으며 몸의 모든 감각을 세워 재료들을 잡아내야 하는,
어떤 재료들의 합과 심지어 시너지때문에 이런 또다른 풍미를 만들어내는지 음미해야 하는 글이다.
다 찾아냈지만 도저히 알 수 없는 어떤 것 하나(화자의 의도)가 끝까지 남아있어 더 안달난다.

(4.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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