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고해성사
삶은 아무래도 악뿐이다. 그중 차악을 선택한다. 취업 준비를 해야 하면 방 청소를 하고, 방 청소를 하기 싫으면 책을 읽는다. 책도 읽기 싫을 때가 도래하면 운동을 가면 된다. 운동을 하러 가기 싫으면 설거지하는 식이다. 가까이서 보면 울퉁불퉁해서 뭐가 굴러가겠나 싶은데 멀리서 보면 주어진 한도 내에서 어떻게든 운용되는 생처럼 보인다.
그게 바로 좆같은 지점이다. 왜 이렇게 가진 게 없을까. 나이는 서른다섯이나 처먹었으면서. 주제는 알까. 욕심은 버리질 못할까. 뭔지 몰라도 뭐든 하기 싫은 이유는 뭘까. 하등 생산성 없는 질문이 표면 아래서 들끓는다. 그 분노 위로 단단하게 굳은 덩이를 땅인 것마냥 디디고 서서 뭐든 또 하고, 또 만나고, 또 아닌 척한다. 꼴 같잖다. 나를 겨우겨우 참아내며 살고 있다. 그래서 파동이 느껴지는 여느 사단이―예를 들어 계엄령이라던가―심경을 건들이면 뭐라도 하지 못해 미치겠다. 추운 날에 거리로 나온 사람들. 그 무리 속에 섞여 울컥이는 분노를 목구녕 안으로 삼킨다. 어떻게 이렇게 다들 평온하지. 어떻게 살지. 어디 확 불을 지르거나 내가 불타 죽어버리거나. 그냥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꾹꾹 누른다.
잘 됐다. 이 김에 평소 까탈스럽게 굴지 못했던 한이나 풀기로 한다. 혈육은 평소처럼 부모를 고생시킨다. 언제까지 경제관념 없이 저따구로 살까 미워 죽겠다. 몇십 년 자식을 키워도 요령이 늘지 않은 부모도 이해가 안 된다. 나도 일개 자식인데 그 자식은 챙김 받고 이 자식은 하소연이나 들어야 하는 처지가 처연하다. 연말 모임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들이 고르는 메뉴는 떠올리기만 해도 느글거린다. 대여섯 명의 취향을 조율하는 과정이 거추적스럽다. 6명이 자야 하는 펜션에 퀸 침대는 두 개뿐인데, 신경 쓰다 결국 바닥에 자는 건 나랑 또 다른 친구겠지 생각하니 벌써 등이 배긴다.
누군가는 한심해할 것이다. 본인 분노도 다스리지 못해 가까운 사람에게나 질질 흘리는, 감정적인 사람. 미안하지만, 평소에도 하나 같이 마음에 안 들어왔다. 분노가 너무 뜨거워 굳어버린 표면까지 다 녹은 게 다다. 나 존나 예민하다!!! 쫌팽이다!!! 어쩌라고!!!!!!!!!
...
오늘 글쓰기는 실패다. 반 발치만 내밀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고해성사할 줄 모른다. 하지만 봐줘라. 위험한 생각은 머릿속에 가두고 1.5룸 방에 갇힌 채, 하는 짓이라고는 유락 글쓰기 과제를 하는 것뿐이다. 밀린 운동과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지 두 시간째다. 하기 싫은 게 너무 많아 집안일을 하도 해댄 탓에 설거지며 빨래며 청소며 할 거리가 없다. 죽겠다 정말. 시발, 운동이나 가야지.
(6.5매)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