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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아무튼 근데! 그 가게가 있는 2층이 밑으로 무너져 내린 거야.
2층이 통째로 꺼져 내리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압사하신 거야.
너무 많은 책들을 2층으로 끌어올린 거지.
그 가게 앞을 지나다가 그 광경을 목격하는데 그만 목이 메더라.
할아버지는 어디론가 실려갔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물건들을 모두 털어가버려서 휑해진 가게가 특히 더 그랬어.
그리고 2층에서 지상으로 쏟아져 내린,
그러니까 내장이 터져버린 것 같은 책더미 속에서
내가 읽다가 창밖으로 내던져버린 한국 잡지가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부분에선 다리에 힘이 풀리더라.

그러니까 잘 살기 위해선 뭔가를 자꾸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과
내가 죽더라도 아무도 목이 메게 하거나 다리에 힘이 풀리게 하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은 거야. 그 아랍 가게 할아버지로부터.

이병률, <산더미>, 《끌림》, 달, 2012.

(2.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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