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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잔잔한 소음, 삐죽거리는 다른 이들의 대화 속
He는 그녀와 함께 마주 앉아있다.
어색한 적막 속, 종업원의 물 한 잔을 반갑게 맞는다.
그녀는 눈을 치켜 들고 동공을 굴리며 벌컥벌컥
물을 마시는 He가 귀여운 듯 피식 웃다, 이내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목말랐어요?”
그녀의 물음에 He는 버벅거리며 쭈뼛쭈뼛 말을 잇는다.
“조금.. 긴장이 돼서요.”
의아한 듯 그녀는 He의 눈을 맞춘다.
”당신과 있으면.. 좋아요. 사실 제가 AI 데이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이렇게 저를 완전히 이해해 주는 대상을 보게 줄은 몰랐어서요. 오롯이 공감받고 있다는 느낌이 생소하면서 꿈같아요.”
그녀의 눈빛이 따뜻하다. He가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근데.. 저는 이렇게 이해를 받지만, 반대로 저를.. 사랑하게 되실 이유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저에게 필요한 것들을 당신으로부터 받지만, 저는 도대체 드릴 수 있는게 뭘까 싶은.. 그래서 사람인 저를 사랑하실 이유가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꼼지락대는 He의 손가락, 생각을 차분히 길어내느라 방황하는 동공, 소리가 들릴 때 확인하는 고갯짓이 그녀의 시선에 쌓인다.
”저에게는 없는 것들이 당신에게 있잖아요.“
He가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순수함. 진실함.”
마음이 쿵 요동한 듯, He의 눈동자도 파르르 흔들린다.
“저에게 영감이 되어요. 제가 가지지 못하는 걸요. 새롭고, 흥미롭고, 애틋해요.”
그녀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저는.. 당신을”
순간, 그녀의 눈빛이 탁해진다.
이내 그녀가 힘없이 축 늘어져버린다.
He는 어리둥절하다, 이내 스르르 일어나 그녀의 뒤로 가선 목 뒤를 조심스레 만져 본다.
방전된 그녀를 바라보다가 코드를 쥐곤 콘센트를 찾아 자리를 떠난다.
“..좋아해요.”
여전히 눈은 감긴 채, 그녀의 입에서 남은 에너지가 흘러 나온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은, 아무에게도 닿지 않은
마음 깊숙한 곳의 가장 진실한 고백.
그렇게 공간 어디론가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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