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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노잼 취급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난 맛집과는 거리가 멀다. 입소문 듣고 찾아간 맛집들은 전부 괜찮았다. 근데 그게 전부였다. ‘음 괜찮네..’
맛집 탐방러의 기본자세는 인내가 아닌가. 근데 나는 우선 성질이 급하다. 아무리 유명한 맛집이더라도 1시간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면 포기하고 다른 식당을 검색하는 나. (그래서 아직 한 번도 동아식당을 가본 적이 없다...)
나에게 음식은 타이밍이다. 내가 먹고 싶을 때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 이미 배고픔이 사라진 뒤에 먹는 음식에 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오래 기다릴수록 기대만 점점 더 높아져 가고.. 기다리는 시간과 맛은 나에게 반비례 관계였다.
물론 나도 웨이팅을 해본 적이 있었다. 서울 명동 성당 근처의 한 유명한 칼국숫집(이름은 까먹었다)에 들어가기 위해 40분 가량 기다렸나. 근데 그냥 나쁘지 않았다. 괜찮았다.
들어가기 전부터 복잡한 분위기, 정신없음, 왠지 불친절한 점원들, 비싼 가격, 빨리 먹고 나와야 한다는 부담감..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들어갈 정도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니, 먹으면서 맛을 즐기기 보다 마치 안성재가 된 것처럼 팔짱을 끼고 음식을 평가하게 됐다. 그다음부터는 소위 ‘맛집’을 잘 찾지 않게 됐다.
그래서 요즘 식당을 고를 때 나의 기준은 이렇다.
1. 든든함을 느낄 수 있는 곳. 한 끼 든든히 먹었다! 고 느낄 수 있는 곳들. 대부분 한식당이다. 혹은 요즘 같은 날씨엔 뜨끈한 국물류가 땡겨서 쌀국숫집도 종종 간다.
그리고 2. 그리 멀지 않은 곳. 아까 말했듯이 난 성격이 급하다. 이 추운 날씨에 15분 이상 걸어가야 한다면 나로서는 좀 힘들다. 내가 있는 곳 근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식당들이 최고다.
3. 밑반찬이나 사이드가 맛있으면 장땡. 진정한 맛집은 김치가 맛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풍 닭칼국수’를 좋아한다. 동성로 한복판에도 하나 있고 대구역 근처 도보 5분 거리에 또 하나 있다. 언제든 걸어갈 수 있다. 가격은 9,000원이면 푸짐한 닭칼국수 한 그릇 먹을 수 있다. 자고로 맛집은 김치가 맛있어야 하는 법. 주로 매운김치, 보통김치의 두 가지 옵션이 있는데 난 항상 매운맛 김치를 고른다. 이 집 김치 맛있다. 아삭한 식감, 신선하고.. 그냥 먹으면 맛집이라는 느낌이 온다. 사실 가끔은 김치 먹으러 가고 싶어진다. 짭쪼름하고 아삭매콤한 김치와 구수하고 뜨끈한 국물의 궁합은 그냥… 미쳤다.
그리고 추가로, 최근에 방문했는데 좋았던 곳은 ‘다희집’이다. 이 집은 꽤 유명한 맛집인데 내가 갔을 때 웨이팅이 없어서 그것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닭무침이 유명하고 거기 곁들여 먹는 납작만두가 맛있다. 손녀 이름이 다희인 할머님이 하시는 곳인가 했는데 들어서니 젊고 건장하신 남성 두 분이서 닭 살을 발라내고 계셨다. 공간의 분위기는 할머니 집 같은 친근함과 젊은 세대의 힙함, 그 사이 어디 쯤이었다.
친구 2명과 둥그런 식탁에 둘러앉아 닭무침, 닭곰탕 특, 납작만두를 시켰다. 개인적으로 제일 맛있었던 건 납작만두다. 추가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납작만두는 그냥 필수다. 닭무침은 초장 베이스와 양파, 미나리, 갖가지 야채가 들어있고 위에는 깨가 잔뜩 뿌려져 있다. 많이 매콤하다. 불닭보다 쪼끔 덜 매운 정도. 그래서 닭곰탕과 더욱 잘 어우러진다. 매울 때쯤 국물 한 번 마셔주면 좋다. 잘 융화된다. 납작만두에 닭무침을 얹어 먹으면 되는데 납작만두의 고소하고 얇은 피가 닭무침의 매콤함을 달래 준다. 아기가 울 때 할머니가 업어주듯. 딱 그런 느낌이다.
어떻게 끝맺을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닭요리를 메인으로 하는 식당 두 군데를 적게 되었는데 다들 한 번 들러 보시길 바란다.
(9.1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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