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맛집

불과 몇해 전까지, 오래도록 대구 지하철 1호선 종점이었던 대곡역 근방에 저는 살고 있습니다. 대곡역 쪽에 산다라고 하면 다들 ‘그렇게나 먼곳에 사신다구요?’ 하며 놀라는 지역 중 하나이지요.

그런 취급을 받는 곳이지만 나름대로 상권이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지하철역이 있는 역세권이자 시작점이기도 하니 더 지나서의 달성군 주민들이 이곳까지 버스를 타고와 지하철로 갈아타는 환승 거점이었기 때문이었죠.

어느정도의 상권이 있는 동네였지만 유독 카페라고 할 만한 것은 생기지 않았었어요. 사실 십몇년 전까지만 해도 카페는 시내상권이나 대학로 상권이 아니라면 잘 찾아보기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동네에 프랜차이즈 한두개 정도는 늘쌍 있곤 했지요. 그런데 우리 동네에는 참 카페가 잘 안생겼더랬습니다.

그러던 2012년, 무려 직접 로스팅을 하는 커피 전문점 ‘커피마을’이 우리 동네에 생겼습니다. 로스팅을 할 때면 일대가 커피 볶는 향으로 가득했는데, 저희 집에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목에 있었던 탓에 기분 좋은 커피 볶는 향을 맡으며 등교를 하곤 했어요.

전 사실 그때 당시에는 커피 맛을 잘 몰랐기 때문에 커피마을의 커피가 맛있다는 것을 꽤나 늦게 알게됐었는데요. 대학생활을 거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커피에 대한 맛 기준이 점차 올라왔을 무렵, 우연히 집에 들어가며 커피마을에서 커피를 한잔 사다 마시게 됩니다. 그때의 충격이란 참 잊히질 않아요.

가격이 꽤 오래동안 동결이다보니 지금은 평균적인 가격이 되었지만 당시로써는 꽤나 비쌌던 가격이었어요. 그래도 커피가 급해서 사서 먹어야 겠단 마음에 오랜만에 커피마을을 들렀습니다.

언재나처럼 친절히 맞아주시는 키크고 늘씬한 중년의 남자 사장님. 입구에 들어서면서 보이는 연식이 느껴지는 크지 않은 로스팅 기계와 쌓여있는 커피 마대자루들, 지금에서 봐도 커피가 맛이 없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언제나처럼 먹던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쭈뼛쭈뼛 서있다 받아들고 나서며 마신 한모금에 저는 절로 ‘와..’ 란 소리가 입으로 흘러나왔어요.

그때껏 먹었던 커피는 보통은 대학로에서 먹어제낀 강배전의 쓰고 가끔 고소한 카페인을 위한 커피였는데요. 가끔씩 여자친구와 가던 커피명가 같은 곳에서의 맛나고 비싼 커피의 맛이 지금 먹는 커피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거에요. 아니 오히려 더 맛있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동네 상권의 카페에서 이런 맛을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텐데 어떻게 이정도의 맛을 내고 또 유지하고 있는지 지금도 정말 신기하답니다.

기분 좋은 산미에 경쾌한 바디감. 벌컥 마시기 보단 자연스레 맛을 음미하며 한모금 한모금 느끼며 마시고 싶어지는 커피였어요.

아메리카노가 이럴진데 핸드드립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그 이후로 커피가 먹고싶으면 굳이 동네에 와서 사먹곤 했답니다.

핸드드립은 예전 시대에 커피를 배우신 분답게 일본식으로 물을 세밀하게 조절하며 내려주시는데요. 보통은 세가지 정도의 원두가 준비되어 있어요. 커피마다 크게 튀지 않고 커피마을 만의 밸런스를 중점으로 각 산지/생두의 특징들을 잘 느껴볼 수 있는 커피에요.

지하철이 연장되며 더이상 종점이 아니게 된 탓에 대곡역 상권은 점점 축소하고 있어요. 그런 상권 상황과 커피마을 이라는 강력한 존재 때문인건지 카페가 새로 생겨도 보통은 저가커피 매장들만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하는데요.
그래서 더더욱 제게는 소중한 카페가 되어가고 있어요. 이런 동네상권 카페가 한자리에서 13년째, 사실 쉬운일은 아니었을 거거든요.

제 어머니부터 저, 그리고 이제 저희 아들도 데려가면서 3대가 단골이 되어버린 동네 카페 커피마을. 오늘 따라 그 이름이 더욱 정겹게 느껴집니다.

(9.1매)

3

2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