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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상호명과 다른 간판. ‘신라주단’이라 쓰여 있다.
익숙한 문을 열고 들어선다. 동성로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즐겨 찾는 이 고즈넉한 감성.
다찌석이다. 앉아서 주문을 한 후, 늘 유심히 바라 보게 되는 삐딱한 물잔.
따뜻한 단호박수프가 먼저 나온다. 구황작물이라면 원래 환장하는 나지만, 이 따끈한 수프를 나무숟가락으로 포뜨듯 떠내어 입안에 넣으면..
혹시 몰라서 말하는데, 평범한 단호박수프가 아니다. 본식 전에 에피타이저를 다 먹어치우는 짓은 하지 않는 나지만 이 수프는 정말 완벽한 맛이기에, 그릇을 긁곤 한다.
음미하며 달콤해지는 기분과 함께 스타터의 제 역할을 다하는군, 고개를 끄덕인다.

기다리던 여름의 맛. “문어메밀면”
문어가 하나 둘 셋.. 한 10점 정도 늘어져 포개 있다.
문어를 가장자리로 살짝 치워놓고, 면을 고루 섞어 본다.
‘잘 먹겠습니다.’ 속으로나마 마음을 정돈한 후, 문어를 한 점 집어 면을 나무젓가락에 휘감는다.
한 입에 와앙- 넣으면..
깻잎페스토의 향긋한 감칠맛이 코뒤로 훅 넘어온다.
그 뒤의 생소하고 달콤한 유자소스, 적당한 얇기로 부드러운 문어슬라이스와 마지막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쫄깃하고 탱글한 메밀면.
환상이다. 눈을 감고 그들의 블루스에 한껏 환호한다.
내가 먹어 본 중 가장 맛있는 메밀면이다. 면 자체의 식감이 먹는 행위 자체를 풍요롭게 한다.
깻잎페스토와 유자소스- 이 둘의 조합을 설명하자면, 깻잎은 살짝 쌉쌀한 고유의 향이 있지않은가. 유자도 사실 마냥 새콤달콤 과일이 아닌 특유의 씁쓸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둘의 조화는 환상적이다.
문어와 메밀면은 둘다 쫀득한 식감을 자랑한다. 문어는 자칫 질길 수 있으며 메밀면은 투박히 끊어질 수도 있는데, 둘 다 쫄깃하지만 부드러우며 그와 동시에 다른 식감의 통합점에서 만나는 순간 끝장나는 조화를 이룬다.
깻잎페스토와 유자소스, 문어와 메밀면과의 궁합.
어느 요소 하나도 과하거나 모자람 없이 딱 적절한 양이기에 서로 감싸안는다.
식재료 식감 조화의 중요성과, 생소한 식재료끼리의 시너지가 훌륭한 음식을 찾기 시작한 것은 아마 이 문어메밀면을 접한 이후였으리라.
쌉싸름함의 통합점, 쫀득함의 통합점.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으며 풍부한 만족감을 선사하는 이 문어메밀면은 쨍한 여름에 자꾸 머릿속에 불쑥 찾아온다.

(5.7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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