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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대한 만큼 소중하고, 잘 아는 만큼 조심스러워 야 할 상태인 것. 관계란 무릇 자주 대하거나 자주 겪 은만큼 빛나며 아름다워지는 것. 관계의 익숙함은 곧, 관계의 성숙함이기를. 오래 함께한 사람을 완전 히 새로운 눈으로 바라봐 줄 순 없어도, 과거의 고마 움을 기억하며 애틋이 바라봐 주는 것. 혹여 흠집이 남진 않을까 온 맘으로 빛이 나도록 닦아 줘야 하는 것.
이젠 익숙해진 관계가, 결코 헤진 관계는 아니라는 것. 마음뿐 아니라, 말과 행동 그리고 눈빛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성숙한 사랑을 위해서는 내가 나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내게 불필요한 것들을 걸러 내고, 내면의 평화를 찾아 주는 강단을 의미한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
<초여름>
줄 노트에 편지를 썼다 세 장이나 썼다
세수를 하다가 편지 안 줘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놀랐다
편지라는 건
안 줄 수가 있구나
이렇게 실컷
말 걸어놓고도
편지를 안 줄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며
냉장고에서 썰어놓은 수박을 꺼내 먹었다
지난 여름 너를 몰랐는데
다음 여름의 우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건
도둑고양이의 마음일까 내가
길고양이가 지나간 길이었대도
할 수 없지
우리는 여름을 살았고 우리의 여름은 지났고
길 위에서
고등어나 치즈 같은 야옹 혹은 안녕처럼
이름이 아닌 이름들을 부르는 동안
네가 오지 않을
여름이 왔다
도파민은 흔히 '쾌락 호르몬'이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동기부여와 보상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입니다.
도파민은 무한정 나오는 게 아니라 소모되는 자원이에요. 상대적으로 자극이 덜한 활동에는 도파민이 충분히 반응하지 않아 집중력과 의욕이 떨어지는 거예요.
강한 자극이 반복되면 도파민에 대한 반응이 점점 둔감해진다는 거예요. 도파민 반응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이때 필요한 건 도파민 피크를 자극하지 않는 잔잔한 활동이에요. 여행이나 파티, 스마트폰 같은 자극적인 활동은 오히려 도파민을 더 소모시키고 둔감하게 만들 뿐이죠.
보통 피크가 높을 수록 크래시가 더 깊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 어, 신나는 콘서트가 끝난 후 느끼는 허탈감, 휴가에서 돌아온 후의 우울감, 중요한 프로젝트를 마친 후의 무기력증 등이 이에 해당해요.
크래시 이후 도파민이 낮은 기간 동안에는 동기 부여, 기분, 에너지가 감소하여 공허함이나 쾌락 부족을 느낄 수 있어요.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일상적인 활동에 흥미를 잃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어려워할 수 있습니다.
도파민 피크와 크래시를 자주 경험할수록 도파민 베이스라인이 낮아져요. 이건 마치 술을 자주 마시면 술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 것과 비슷해요. 도파민 자극이 계속되면 뇌가 그에 적응하려고 하기 때문에, 같은 자극에 대해 점점 더 낮은 반응을 보이게 돼요. 그 결과 일상적인 활동에서 만족감을 느끼기 어려워지고, 무기력감을 느끼게 되는 거죠.
진정한 휴식의 의미에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전 에는 쉴 때 스마트폰으로 쇼츠나 유튜브를 봤는데, 그것이 사실 계속 도파민을 고갈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제는 휴식 시간에 명상, 정리, 산책 같이 도파민 피크를 부르지 않는 잔잔한 활동을 해요.
'너 이런 거 좋아했잖아‘
마치 상대방을 다 안다고 착각하는 듯한 발언.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문요한 님은 이런 말을 했다.
오래가는 사랑을 하려면, 상대방을 끊임없이 알려고 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상대에 대해 끊임없는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
책 한권을 산다고 생각해보면, 보통 우리는 책 표지를 보고 산다.
좀 신중한 사람은 목차정도 보고 살 것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어떠한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사랑을 하려면, 책표지와 목차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뒷장을 계속 읽어나가야 한다.
아무리 쉬운 만화책이라도 그 뒷장을 넘기려면 다음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 었어야 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는 건‘ 어떤 노력이 필요 없지만 ’사랑을 지속하는 것‘은 계속 그 사람에 대해 알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의 동의어 중 하나는 “정성”이다.
사랑은 감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굳건하고 강하고 경건한 지혜의 인도를 받는 것으로서, 무엇보다도 순결하고 올바른 것에 고착한다.
사랑은 인색하거나 틀에 박힌 것이거나 제한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은 함께 나누어야만 완전해진다.
사랑은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서 또 다른 잘못을 범하기보다는 잘못된 것을 감내하는 쪽을 택한다.
우리가 어느 한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너와 영화를 보러가면 나는 종종 스크린 대신 너를 보곤 했다.
즐거운 장면을 보는 너는 어떤지 슬픈 장면을 보는 너는 어떤지 너는 매순간을 어떻게 맞이하는지
그러다 너와 눈이 마주칠 때면 내겐 그 순간이 영화였다.
깊은 사랑의 힘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끔 만들어주 는 것에 있다. 우리 함께 더 완전한 삶으로 나아가자 자꾸 꼬드겨주는 사랑을 하고 싶다.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람이든, 상황이든.
지나간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음을 잊지 말 것. 떠나가는 것을 붙잡는 일에 집착하다가, 곁에 머무르던 것을 잃어버리지 말 것. 때에 따라 나타나는 시절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내 인생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 캐릭터의 퇴장에는 박수를 보내면 된다. 후회 없이 사랑했던 그 시절의 내가 오랫동안 빛날 수 있도록.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한 번도 찾아다니지 않던 무언가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내게 항상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고통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가짜 행복'을 좇는 고통이다. 많은 사람이 출세, 부, 명예를 손에 잡히는 행복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런 행복은 무게 중심이 자기 안이 아니라 자기 밖에 있다. 그래서 좇을수록 의심이 들고 점점 공허해지며 더 괴로워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진짜 행복'을 좇는 고통이다. 진짜 행복은 허상과 같아서 찾기가 어렵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며, 계속해서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무게 중심을 자기 밖에서 자기 안으로 옮겨야 하며 자신이 무너지고 깨지고 부서지기 때문에 괴로울 것이다. 그런데 진짜 행복을 좇으면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 타인에게 비굴하지 않고 기죽지 않는 당당함,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는 품격이다.
'all good or all bad‘ 태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쁘다고 생각하는 면들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다. 그러고 나서는 그것들을 호기심 있게 들여다보라. 그러면 초조함과 불안함과 두려움이 있던 자리에 여유와 생동감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모든 개인은 각자의 본성에 의해 고통의 양이 결정돼 있다.
따라서 고통과 행복은 외적인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본성의 척도와 개인적 소양에 의해 결정된다.
왜 모든 사람이 성숙한 사랑을 해야 하는가? 왜 모든 사람이 열정적인 사랑을 해야 하는가? 어떤 모습이든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고 편안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된 거다. 이런 마음이라면 우리는 굳이 이상적인 것에 매달리지 않고 다른 사랑의 형태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얼마든지 나 자신이 행복하면서도 풍부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일단 결정을 내렸으면 다른 옵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내 선택을 최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게 맞다.
“때로는 우리가 상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사람은 어떠한 중오나 분노 혹은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없이 단지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녀의 문제는 아버지가 채워 주지 못한 사랑을 남편에게서 구하려는 데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본 순간 어릴 적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해 깊은 상처를 입은 자신을 어루만져 주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결국 과거와 똑같은 상황을 반복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그녀의 무의식이 남편에게 첫눈에 반하는 결 과를 낳은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을 외롭게 만들었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그와 전혀 상관없는 남편에게 퍼붓기를 반복했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자신을 너무 심하게 몰아세우는 그녀를 원망했다.
정신분석 치료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 드디어 이 환자가 나에게 마음을 여는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럴 즈음 갑자기 나에게 화를 내는 환자도 더러 있다. 어떤 환자들은 다음 면담 시간에 일부러 안 나오거나 늦기도 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들은 친밀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자아의 경계가 약한 사람들은 상대가 경계를 무너뜨리고 자신을 깊숙이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상대방이 내 못난 점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때로는 생각이나 가치관이 너무 달라서, 때로는 바라는 것이 너무 달라서 우리는 서로에게 실망하고 화를 내며 상처를 받는다. 고슴도치처럼 한두 번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다가 상처를 입으면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게 된다. 시도했다가 또 다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처 입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그 누구와도 가까워질 수 없고,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사랑을 주고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더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상처 입을지라도 나를 열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상대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거나 나를 귀찮아하는 것 같으면 "우리 사이에 이럴 수 있느냐"면서 마치 거절이라도 당한 것처럼 화를 낸다. 그러나 이 것은 친밀함을 가장한 명백한 폭력이다. 상대를 자기 통제 범위 내에 두기 위한 폭력이며, 상대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폭력이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가 나와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의 감정과 생각과 생활방식 모두를 존중하는 과정이다.
즉 내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다. 친밀해 진다는 것은 두 사람의 내면이 나누는 대화이다. 각자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아끼고 보살피면서 이루는 깊은 소통인 것이다. 그러므로 가깝다는 이유로 자기 방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좋아하는 것을 많이 두며 살아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옷 좋아하는 동물, 색감, 촉감, 날씨, 향기, 시간, 나를 이롭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내가 애정하는 것들은 곧 나의 취미가 되고 취향이 되어 어느새 삶의 모양을 이룬다. 나의 하루를 조성하고 나라는 사람을 만든다.
표정 잃은 얼굴로 거리를 걷다가도 지는 노을 바라보며 아름답다 느끼는 게 사람이고, 피로에 찌들어 다 귀찮게 느껴지는 하루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응원 한 마디면 없던 일도 생기는 게 사람이다. 무언가 좋아진다는 건 삶이 소중해진다는 거다. 살고 싶은 순간이 늘어난다는 거다. 느낄 수있는 행복이 많아진다는 거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들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의 삶은 애정하는 순간들로 둘러싸이게 된다. 자주 행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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