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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럭 수집2
이제는 만날 수 없게 된 사람을 생각한다. 부재. 여기 없음. 반면, 나는 여기 있음. 여기 없다는 것. 여기 있음이 여기 없음을 안아주고 싶을 때도 사랑은 발생한다. 그 발생의 순도를 따진다면 여기 있음과 여기 있음이 부딪칠 때보다는 낮을 수도 있겠다. 허나 그 순도가 낮더라도 그건 사랑임을. 실재하지 않기에 지속되는 마음이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제는 만날 수 '없기를' 바랄지도. 만날 수 있더라도 만나지 않는다. 발생 사랑은 지속된다. 여기 있음과 여기 없음의 틈 사이에서 돋아나는 싹. 작다. 귀하다.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다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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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정리를 한다. 조명을 끈다. 환했던 방이 어두워진다. 암막커튼은 제 역할을 잘하고 있다. 역할을 마감시킨다. 하늘이 멀다. 구름은 멎었다. 아침을 챙겨 먹을까. 커피를 먼저 마실까. 고민하다가 커피를 마시기로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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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고양이를 마주친다. 그 고양이는 사람을 경계한다. 사랑하지 않으려 한다. 인간은 고양이를 사랑, 하려고 하나? 사랑을 쉽게 전할 수 있는 위치 같기도 하다. 사랑의 위계. 사람이 고양이를 귀여워할 수 있는 건 고양이가 사람에게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일은 인식하고 있든 하고 있지 않든 자신이 고양이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음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도 실은 그런 게 아닌가. 사랑이 평등한 주고받음 같다가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우위는 사랑의 본령 같기도 하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온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 불순물. 더욱 더 순도 높은 것을 바라면서도 정작 빤히 보이는 불순물에는 눈 감으려 한다. 모르는 게 약. 아는 게 힘. 사랑에도 적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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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순도니 불순물이니 진짜니 가짜니 위치니 인지니 인식이니 없음이니 있음이니 이니 미니 마니. 사랑은 글로 잡히지 않을 것이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건 사랑의 그림자거나 곁 파생되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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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함과 붕괴 가능성을 인정하더라도 사랑을 지속하는 사람들은 강하다. 사랑이 강해서 사람도 강해진다. 사랑하기 위해 살지 않지만, 사랑하면 살아진다. 꼭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살아 있다면 사랑하는 게 좋다. 온갖 사랑의 부정적인 면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벽에 붙여놓고 빤히 보다가도 사랑하고 싶은 그 무엇이 생기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다만, 사랑은 해하지 않는다. 해를 가하지 않는다. 사랑을 받는 이는 사랑을 거절할 수 있다. 사랑을 주는 이도 이를 알고 건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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