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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럭 수집2

  1. 삼성 라이온즈의 모든 것을 안다. 원년 팬인 아빠 덕에 일찍부터 야구를 접했다. 2011, 2012, 2013, 2014. 4년 연속 우승을 거둔 왕조 시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매일 경기만 봤다.

  2. 그런데 몇몇 선수들의 도박 사건이 터지고. 순위는 점점 떨어졌다. 팀은 암흑기를 맞았다. 하지만 왕조 시절에 느낀 행복을 잊지 못해서. 삼성을 무시하는 글을 보면 손이 가만히 있질 못했다. 님이 삼성을 얼마나 아신다고요. 키보드 배틀을 뜰 때도 있었다.

  3. 하. 유치해. 공부나 해야지. 휴대폰을 끄려던 찰나. 중고거래 알림이 울렸다. [이승엽 선수 싸인 유니폼] 넹 거래 가능해요. 며칠 전 보낸 메시지에 답이 왔다. 직거래로 약속을 잡았다. 라이온즈까면뒤질랜드? 오… 닉네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4. 중고거래 판매자가 옆 반 남학생일 확률을 구하시오. 인사를 한 적도, 대화를 한 적도 없었다. 얼굴만 알고 있었다. 너도 야빠야?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린 그때부터 같이 경기를 보러 다녔다. 다만 서로에 대한 관심은 하나도 없는 채. 야구 얘기를 하는 것도 바빴다. 친구 하나가 물었다. 너 걔랑 친해? 아니. 근데 왜 같이 하교해? 야구 보러 가려고.

  5. 학교에선 학기마다 예술제를 열었다. 학생들의 시, 칼럼, 그림, 사진 등을 복도에 전시했다. '여성도 하나의 인격체다'. 언젠가 백일장에 쓴 칼럼을 냈다. 선정됐다. 진부하다면 진부한 글이었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좆같았음 좆같았지 적어도 쪽팔리진 않았다.

  6. 그저 그런데. 이 정도는 나도 쓸 듯. 그런 말들엔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가늠이 안 갔다. 고삼이었다. 신방과를 준비해서일까. 글에 관한 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확 떼버릴까. 칼럼이 붙은 장소로 갔다. 어? 걔다. 걔는 친구와 내 글을 읽고 있었다.

  7. 언제까지 읽는 거야. 네 스타일이야? 또 또. 아무것도 모르면서 왈가왈부하겠지.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려 하는데 대화 소리가 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걔가 하는 대답은 생각지도 못한 거였다. 얘가 이거 쓰면서 느낀 고뇌가 가늠이 안 돼서. 멋있다. 펜을 쥔 이래 처음으로 들어보는 감상이었다. 나 계속 써도 될까.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던 시기 답이 됐다. 써야겠다. 잘 쓰든 못 쓰든.

  8. 나 이제 너랑 더 가까워지고 싶어. 그런데 그냥 친구 사이 말고.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어. 그때 처음으로 타인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사랑이었다.

(6.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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