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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락에서 유키즈온더블록 카세트를 보았다. 어릴 적 첫사랑이 그 앨범 CD를 사주었다. 당시는 휴대용 CD플레이어가 흔하지 않아서 집에서 듣고,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에 틀어달라고 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무척 악필이었던 그 아이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우리 예쁜 OO이 생일 축하해”라고 쓰인 카드를 주었었다. 항상 나를 예쁜 누구야라고 불렀다.
야구모자를 늘 쓰고 있었는데, 나를 빤히 내려다보면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내 이마를 모자챙으로 콕 하고 치던 모습에 반했었다.
나 어릴 적엔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그 애 집 앞에서 공중전화로 전화를 하면 내려오곤 했다. 집으로 놀러 가면 밥상을 차려주었던 기억이 난다. 어린 남자아이가 밥을 차릴 줄 안다는 것에 나는 조금 놀랐었다. 계란 프라이를 예쁘게 잘 구워 주면서 꼭 잘 만들었냐고 묻곤 했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쁜 아이였다. 동성로 한복판에서 심바 들듯이 나를 들고서 내가 진짜 가볍다고 웃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평생의 기억 중 가까운 과거보다 청소년기와 젊은 성인기의 기억이 더 잘 난다고 한다. 세월이 이렇게나 지났는데 기억이 생생한것으로 보아 그 말은 맞는가 보다.
나는 그 아이를 두 달 사귀고, 잊어야겠다고 마음먹는 데 이년이 걸렸다. 무척이나 섬세하고 자상하고 잘생긴 아이였지만 자기 주변에 모든 여자를 만났었다. 나는 그중 한 명이었다. 그 아이 집 앞 공중전화엔 항상 그 애를 기다리는 여자아이들이 많았다. 내려와서 내 손을 잡고 가면 여자아이들이 흘겨보곤 했다. 참 철없고 덜 익은 과일 맛이 날 것 같은 사랑이었다.
나는 누군가 나를 빤히 아주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을 내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볼 때 사랑에 빠지는 것 같다. 그 사람도 좁은 길에서 미처 피하지 못한 나를 큰 덩치로 막고서 그렇게 쳐다보았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나는 그네를 타고 있고 그 사람은 담배를 피우고 있던 모습이 항상 떠오른다. 왜 그 기억이 생생한지 알 수는 없다.
꿈에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연기를 내 폐 속 깊이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하다 새로운 담배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켜 불을 붙이려는 순간 큰 불길이 터져 나와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사르르 다 타버렸다. 디즈니 만화 속 담배처럼.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행동을 세번 반복하고 꿈에서 깨어났다.
평소 내가 선명하고 생생하게 꾸는 꿈들은 예지몽인 경우가 많아 그 의미가 무엇일지 한참을 생각하였다. 담배연기가 내 입속에서 물줄기처럼 뿜어져 나올때 시원함을 느꼈는데 왜 일까. 꿈은 항상 지나간 하루를 복기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난 무얼 되새기려는걸까.
알 수 없는 무의식으로 시작하는 하루다.
그 사람은 가늘게 생긴 담배를 피웠다. 나는 그 모습을 항상 바라보았다. 그 사람에게서 나던 박하향이 나, 나는 고개를 든다. 그 사람과 함께 사라진 나의 후각이 돌아오고 있다. 꿈에서 뱉어버린 연기와 함께 진짜 그가 사라지려 한다. 그가 꿈에서 주었던 반짝이는 오백 원짜리 동전과 아이스크림과 기다리라는 말이 연기와 함께 사라진다. 나는 이 년 동안 흘리지 못한 눈물을 이제서야 흘리려 한다.
울고 싶지 않다.
나는 몸이 많이 피곤하거나 심적으로 머쓱한 일이 생기면 그 사람 이름을 육성으로 되뇌는 버릇이 있다. 무의식중 계속해서 되뇌기를 시도한 그 이름은 내 해마 속에서 엄청난 밀도로 중첩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장기기억 속에 저장 되어있는 이름을 지워버릴 수 있는 방법이 핀셋으로 한 장 한 장 떼어내는 것뿐이라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공상이 많은 intp인 나는 투명한 스티커에 아로새겨져 겹겹이 차곡차곡 붙어 있는 그 이름을 핀셋으로 조심스레 떼어내는 상상을 한다.
한장씩 떼어내며, OO 잘 가~
심신이 힘들 때마다 주머니에서 꺼내는 옐로우카드나 베개 속 부적처럼 그 이름이 쓰인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 아직도 그 사람을 생각하지만 그건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리워서도 아니다. 애틋한 마음도 이제는 없다.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어떠한 것에도 동요하지 않고, 감정이란 것들을 다 써버리고 서도 더 이상 충전하지 않는, 그냥 있는 마음이다. 신남과 설렘이라는 것이 1도 남아있지 않은 점선 같은 감정이다.
영화 her에서 테오도르가 사만다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난 앞으로 내가 느낄 감정을 벌써 다 경험해버린 게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앞으로는 쭉 새로운 느낌은 하나도 없게 되는 건 아닐까."
나는 이 영화를 보다가 이 대사가 나오자 울었었다. 마치 십 년 뒤 내 감정을 안다는 듯이.
나는 이제 내 마음을 내 감정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충전해 보고 싶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새로운 음악을 듣게되면 작은 몸짓으로 흥을 돋우고, 4월의 흩날리는 연분홍의 꽃잎을 보며 작게 감탄하고, 더 나은 내가 되고자 자그마한 노력들을 계속하며 내 어깨를 마주 안고 싶다.
요즘 글을 쓰면서 그간 떠올리지 않았던 그사람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하게 귓전에 울려서 당황스럽다.
내 인생 가장 힘들 때 누군가 보내준 듯이 홀연히 나에게 와서 존재만으로 힘이 되어주었던 사람. 다시 오지 않을 사랑. 하지만 이제 그 이름을 그만 불러야 한다.
나는 수면내시경을 받고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얼마 전 회사 가는 길의 산머리에 걸쳐져 있는 파도 모양 구름을 보았다. 그 구름은 슬로모션으로 산을 넘어가려 애를 쓰고 있었다. 구름이긴 하지만 자신이 파도라고 최면을 건듯이 아주 천천히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나에게 최면을 걸듯 그 구름처럼 천천히 무언가를 넘어야 한다는 걸 지금 알고 있다.
나는 이제 <사랑의 기술>에 적힌 에리히 프롬의 글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과 관심, 지식을 줌으로써 서로의 생동감을 고양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고 싶다.
_<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기 자신,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다시 말하면 생명을 준다. 이 말은 반드시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을 준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머, 자신의 슬픔-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의 모든 표현과 현시를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생명을 줌으로써 그는 타인을 풍요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의 생동감을 고양함으로써 타인의 생동감을 고양한다. 그는 받으려고 주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주는 것 자체가 절묘한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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