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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네 머리카락부터 발의 온도까지 모조리 팔아버릴거야. 팔아낸 네 영혼을 나의 문장에 박제할거야. 박제된 문자를 무덤 아래 덮어 둘거야. 너를 닮은 들꽃 한아름을 안고서 모든 비밀을 토해낼거야.
1.
빌려온 기타는 꽤나 유용하고
실려 온 감각만이 손끝의 주름을 더할 때
당신은 없고 너는 있고
너도 없고 나만 있을 때
밤을 두고 내기하며
가진 것 전부를 내걸 때
소용없는 것과 필요 없는 것에 대하여
말 없는 손가락에게 책임을 물을 때
2.
진심
소음이 너로 귀결되는 밤이 지속되었다 허공에서 너와 대화하는 일이 잦아졌고 노란 등은 원형으로 번져나갔다 매일 하루치의 소원을 빌었다 거짓은 언제나 투명했다 모든 것을 관통하는 까닭에 너의 얼굴을 매만지며 허전한 등의 차례를 외면했다 곧 사라질 장면에 음성을 빚어내기란 어려운 일이었으며 간곡한 침묵이 닿았다면 틀림없이 눈이 마주쳤을 것이었다 깍지 낀 적 없는 손에 보라색 실 하나를 걸고서 느슨하게 내내 감상했다 도려낸 기억과 숲에서 만날 순간을 더하면 이내 현실이 추락했고 오늘은 오지 않았다 너를 찾는 곳에는 너를 제외한 모든 것이 있었다 하나의 길에 끝은 보이지 않았고 눈을 감거나 서서 기다리는 일이 맥박처럼 함께 했다
3.
깊지 않은 밤에 초록을 들고 너를 부르면
숲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던 소실점이 목구멍까지 와있었다
4.
네게 늘 해명하던 때에 나는 보잘 것 없는 선물을 수집하고 있었다. 계절을 지나온 고백과 문장이 녹슨 소리를 냈고 과장된 연주는 필요 없다고 네가 말했다. 많은 것이 닳고 깎여나간 진심이야, 오해를 풀고 싶었다. 네가 달이 된 날도 있다는 뜻이야, 오독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꽃 피지 않는 숲에도 사랑은 있고 네가 밟아보지 않은 땅에도 안개 낄 틈은 여전하다는 생각이었다. 가늠하지 않는 습관을 가진 네게 어떤 선물을 꺼내 보이면 좋을까. 잘못된 처음도 있다고 말하는 네게 어느 것의 의미를 설명할까.
5.
가장 큰 잔에 커피를 따르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없는 문장 없는 마음이 되어 방금 녹은 얼음처럼 없던 일이 될까 의문과 체념이 하나의 축에 놓인 후로 값은 늘 미지수였다 선명한 것은 시간 뭉개진 것은 기류 세상에 없던 일이 생긴 후로 개화하지 못하는 것들이 천지에 널려있었다 무엇도 담지 못하는 공간은 역사 이전에 밀폐된 까닭에 소리를 잃었다 손 넣은 적 없는 큰 주머니, 휘파람, 무거운 모자, 내가 엮은 거짓말, 다른 온도에 살고 있는 너를 보는 일 그리하여 동력 없는 마음이 너를 관찰한다 바라보는 방향은 혼선이 잦아 늘 낡고 어지러웠다
6.
너는 왜 나를 찾았을까 나는 왜 너를 찾고 있을까
종말을 논하기 전 우리는 처음을 잃었어야 했다
7.
함께 있을 때면 벌거벗은 마음으로
또는 다시없을 경건함으로
모든 정적과 대화를 사랑했다
피지 않는 백합을 닮은 너
찰나를 수집하는 너
어떤 것도 기록하지 않는 너
아름다운 그림자를 가진 너
아끼는 것이 너인지 너를 향해 수식하는 내 마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네가 있는 공간은 늘 완벽해 울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8.
풀 위에 서면 저 멀리 목적지가 보였다 그날은 유독 구역질이 났다 습한 초록과 함께 아끼는 너를 모두 토해냈다 저기 저 사람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장면은 익숙했다 내내 그려온 까닭에
수많은 새벽을 건너던 그리고 그런 너를 기다린 나는
이윽고 마침내 결국에 만나고야 말았고
이런 내가 그런 네가 더이상의 이별을 상상할 수는 없었다
9.
들꽃 무덤에 누워 낮잠을 잤다 세상은 올리브색이었다 무언가를 그리기 위해서는 수십 번의 사랑이 필요했다 꿈속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렸다 주인공은 늘 한명이지, 끔찍한 사실만 드러났다 내가 네가 된다면 말이야 네가 내가 된다면 말이야 너와 내가 서로를 부른다면 말이야 시시한 것들을 다 집어치운다면 말이야
10.
어쩌면 너는 처음부터 여기에 없던 사람, 네가 버린 공기만 잔뜩 쌓여 사방을 메우는 여기는 처음부터 없던 공간, 몇 번의 계절 중 하나는 하염없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처음이었다. 사물을 스치고 활자로 기록하고 머리를 뉘어도 기억나지 않는 너에게. 문과 창문 사이를 순식간에 가로지르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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