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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다윈은 우리가 가장 위에 있지 않다 하였다. '자연'은 비약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것들은 진화의 사다리, 즉 누가 우월하고 누가 열등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많은 방식으로 생존하고 번성한다고 주장했다.
무한히 많은 방식. 이것은 사랑에서도 적용되지 않을까?

모든 사랑은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 그렇기에 누가 더 맞고 틀리지 않다. 서로의 사랑 방식을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나의 방식이 아닌 사랑을 꽤나 오랫동안 부정하고 배척해온 것이다.

우생학을 주장한 데이비드는 그 시절 두려웠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형을 잃은 것으로 인해 통제되지 않은 죽음에 대한 몰아치는 두려움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통제와 규격에 밀어넣었던 것 같다. 우생학을 주장하는 시간동안 그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제로 불안을 잠재우려 했다. 알 수 없이 드는 불안감에 현실을 보지 못하고 '통제'로 잠재우려 노력했다. 그리고 사랑을 '통제'하려했던 나처럼, 오히려 그를 유지 되지 못하게 했다.
데이비드의 삶. 이것을 사랑에 빗대어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데이비드에 대해 말해주는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중요하지 않다.'
문장 그대로 단순히 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나의 세계는 이 수많은 세계 안에서는 주장할 수 없는 한낱의 어떤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통제를 하면 중요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이 나의 사랑을 망치게 만든 큰 실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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