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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2

<고백>

너에게 편지를 남겨.
이건 다시없을 노래, 사라질 기억에 관한 거야.

꽤 오래전 너를 발견했어. 너는 그날을 잘못된 처음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말이야.
먹물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너.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서있던 너.
너에게는 발소리가 나지 않았어. 네 발이 꼭 시린 물속에서 나온 것 같다고 생각했지.
문득 내가 알지 못하는 너의 수많은 발자국을 떠올렸고 그때부터 나는 질문이 많은 사람이 되었어.

나는 종종 너를 기다렸어. 향을 피우거나 식탁을 닦거나 이불을 정리하면서 말이야. 그때의 침묵은 새벽을 덮을 만큼 고요했어.
어떤 때에는 까닭 모를 마음으로 가장 큰 잔을 골라 네 몫의 커피를 따르곤 했어.
그거 아니. 너를 안으면 네가 싣고 온 바람 냄새가 났고 거기에는 늘 계산 없는 마음이 안개처럼 떠다녔다는 거.
너와 나는 각자가 이해한 세상을 꽤나 좋아했던 것 같아.
너는 내가 그린 장면을 감상했고 나는 네가 기록한 풍경을 상상했어.
그럼 부드러운 실로 시간을 잠깐 묶어두는 기분이 들었어.
흔적같은 날들이 쌓일수록 마치 그게 일상이고, 밤과 새벽 사이가 전부인 것처럼 둥둥 진동하기도 했어.

나는 너와 있을 때면 무엇도 어떤 날도 될 수 있었어.
이끼가 되기도 했고 레몬이 되기도 했고 파도가 되기도 했어.
늘어진 비닐이 될 때도,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가 될 때도, 불에 데인 꽃이 될 때도 있었지.
볼에 별을 쏟거나 우물에 포도주를 모조리 부어버린 적도 있었어.
만개한 나팔꽃을 한아름 꺾어온 날도 있었고.
설명하지 못할 마음이 늘어갔어.

같은 계절이 지나고 또 지나 처음이 되었을 때쯤 말이야.
너는 나에게 불투명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너에게 깜깜한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어.
어느 것 하나 완전하지 않았지만 잃을 것도 없는 마음이었지.
그때의 나는 너를 동력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어.
그런 작업을 할 때면 주인 없는 마음이 그림자처럼 옆에 놓여있었고.

나란히 누워서 너의 얼굴을 쳐다보면 감은 눈가에 늘 달무리가 지는 까닭에, 나는 고개를 돌리는 법이 없었어.
그런 너를 느슨하게 내내 감상하곤 했어.

나는 네가 되기도 했고, 네가 내가 되기도 했지.
우리인 적 없는 너와 내가 말이야.

사실 네 숲에 가는 꿈을 자주 꿨어.
나는 맨발로 달리는 사람이었지.

'초록을 쥐고서 너를 부르면 숲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던 소실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초록을 쥐고서 너를 부르면 숲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던 소실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초록을 쥐고서 너를 부르면 숲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던 소실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초록을 쥐고서 너를 부르면 숲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던 소실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초록을 쥐고서 너를 부르면 숲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던 소실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

어떤 문장이 환청처럼 들려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혹시가 아니라 '아마도' 그럴 거라고, 달리면서 생각했지.

그렇게 천천히 손가락 마디를 짚다가. 먼지 위로 지문이 쌓이다가.
어느 날 말이야.
진짜 그곳에 도달했다고 착각해버린 거야,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해서 미안해. 불안하고 벅찬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어.
더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중 하나는 너도 마주한 감정일 거라고 생각했어.

매일 하루치의 소원을 비는 사람처럼 나는 물었고,
안개에도 질식하는 사람처럼 네가 대답했어.

"발이 시리지는 않아?"
"아무도 못 믿겠어."
"선물은 왜 안들고 가?"
"기억이 잘 안나더라."
"네 생활에 여전히 내 자리는 없니?"
"신경 쓰이게 하지 말아줘.“

너는 기록을 읽었고 다짐을 이야기했어. 선언하는 심판처럼 말이야.
나는 거짓말을 엮었고, 오해하려 들었고,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털어놓았어. 뭐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야.

어째서 너는 처음과 같은 표정으로만 나를 바라볼까,
네가 알지 못하는 것과 모르는 체하는 것의 간극을 해명할 수는 없을까,
수많은 주인공이 너라는 걸 알고 있을까,
네가 달이 된 날도 있다는 뜻이야,
묻지 못하는 질문만 늘어갔지.

이제는 알아.
너를 만나면 언제나 겨울이라는 거. 그게 처음의 계절이기 때문이라는 거. 네 속성과 닮았다는 거.
내가 기다리던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라 네가 여기로 오던 너의 시간이기도 하다는 거.
나는 숨을 헐떡이고 너는 그 자리에 서있다는 거.
너는 나무를 조각하지 않고 매만지는 사람이라는 거.

드디어 너에 대한 오독을 멈춘 거야 나는.

그동안 순서 없이 내버려뒀던 마음들이야.
앞으로 아무 곳에서 아무렇게나 사라질 문장들이야.
출처 잃은 것들은 죄가 없다고 말하면 네가 이해해줄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잖아.
이제는 말이야.
의미로 먹고 사는 삶에서 네가 사라지는 상상을 해.
그건 꿈이 아니라 연습이고.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종이 위를 불면 남는 건 결국 안부같은 이야기 뿐일거야.

내가 동경한 그 숲에서 오래 머물러줘.
네가 쉴 때는 따듯한 보라색으로 발이 물들 거고, 네가 서있는 곳에는 초록이 무성할 거야.
네가 잠을 잘 때는 은하수가 일렁일거고, 꿈을 꾼다면 누구에게도 닿지 않은 신선한 공기로 가득할거야.
피지 않는 백합처럼 언제나 너다운 날들이길 바라.
너의 삶을 지탱하는 것들이 네가 되어서 비로소 자유로워졌으면 해.
진심이야.

죽은 고백은 이제 어디든 갈 수 있을 거야.
죽은 고백은 이제 어디든 갈 수 있을 거야.

(13.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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