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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2

<비록 : 悲錄>

“현주이!!!!”
흐릿하게나마 보이던 현준의 형체가 사라지자 우석은 놀라 소리쳤다.

해가 가장 길다는 6월이었지만 비슬산의 어둠은 산길을 내려가던 현준과 친구들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그날은 6월 모의고사 날이었다. 현준과 친구들은 일찍 마친 김에 여름방학동안 놀러갈 계곡을 찾아본다며 자전거를 타고 비슬산으로 달려간 것이다.

”끼이익- 턱 턱, 턱턱“

현준의 주위로 뒤따르던 친구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그들은 정신을 잃은 현준을 우선 갓길로 옮겼다.

“현주이! 정신차리라! 개안나?”

다리와 팔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는 걸 느끼며 정신이 조금씩 든 현준은 쓰러지기 직전 상황이 떠올랐다.

현준은 자전거를 타고 가장 앞장서 가고 있었다. 오르막이 힘들었던 만큼 내리막의 스피드를 즐기던 현준은 차들의 헤드라이트에 눈이 잠시간 멎게 되면서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거기에 속도도 너무 빨랐다.

빠르게 내려가는 현준의 자전거는 핸들이 잘 꺾이지 않아 가드레일에 거의 부딪힐뻔 하며 겨우 코너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브레이크를 빠르게 잡을 수도 없었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다간 바로 미끄러질 것이 뻔했다.

’우선은 반대편 차들이 나를 보게 해야겠어. 왼쪽 주머니에 핸드폰을 꺼내 후레쉬를 켜야겠다. 그리고 오른손으론 살살 브레이크를 잡아야…‘

그것이 현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쓰러진 현준을 친구들이 일으켜 세웠을 때, 현준은 오른쪽 어깨 쪽에 강한 통증을 느꼈다. 오른팔과 오른 다리는 아스팔트에 쓸려 거의 전체가 다 까져서 피가 나고 쓰라렸다.

.

두돌이 갓 지난 아들이 킥보드를 타다 넘어져 울음을 터뜨렸을 때, 현준은 아찔했던 그날의 기억이 갑작스레 떠올랐던 것이다.

’그날 아빠는 왜 오지 않았을까.‘

다 부서진 자전거를 끌고 현준은 걱정하는 친구들을 애둘러 먼저 보내고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현준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자전거 타다가 넘어졌어”

이혼을 한 뒤, 현준의 아빠는 홀로 자식 둘을 보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바쁜 회사 생활과 새로 생긴 애인까지,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현준의 누이는 타지에서 직장을 다녔기에 집에는 현준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자전거 사고가 난 그날도 역시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괜찮냐? 병원은 안갔고”
내심 놀란 목소리로 현준의 아빠가 물었다.

“일단 집으로 왔는데 어깨가 좀 많이 아파서 병원 가야될 거 같아”

“혼자 갈 수 있겠나?”

“혼자?… 어. 택시타고 가면 될 거 같다”

“그래, 뭔일 있음 전화해라이”

.

“읏챠. 괜찮아 아들? 어디보자. 어디 아야했어?”

아들을 일으켜 세우며 현준은 아들이 다친 곳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아들이 태어난 뒤, 아들에 대한 사랑이 커져갈 수록 현준의 마음 한 켠엔 알 수 없는 쓰라림이 생겨났다.

‘아빠는 날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그날 밤 홀로 응급실로 걸어가던 어린 현준의 마음 속에 가족의 사랑이란 단어는 완전히 지워졌다. 부모의 이혼으로 안그래도 옅어져 가던 것이었다.

가족의 사랑, 가족애란 것이 다시 피어난 건 아들이 태어나면서 부터였다.

아빠 현준과 아들 현준, 둘 사이에서 '가족애' 는 전혀 다르게 작용했다.

‘아들이 다쳤다는 데 와보지도 않는다고? 그게 가능해?’

언젠가 현준이 아빠에게 그날의 이유에 대해 물어봤을 때, 현준의 아빠는 니가 안와도 된다고 해서 큰일이 아닌 줄 알았다 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넘어가곤 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의 현준은 그 말을 어느정도 이해했다. 가족애란 것이 없이,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납득이 가능했다. 현준은 언제나 '그럴 수 있지 뭐' 하고 가족들을 이해해 나갔다. 그러지 않고 사랑을 찾고 울부짖는 것이 그에겐 너무 힘든 일이었다. 현준은 가족애란 단어를 지워버린 채 가족들을 머리로, 이성적으로 이해해가며 살아갔다.

그런 그에게 아들이 생겼고, 가족애란 것이 다시 마음에 피어 올랐을 때, 현준의 어설팠던 이해들은 가볍게 날라가버린 것이었다.

아들이 다친 몸을 이끌고 응급실을 가야한다는 상황을 전해들은 아빠가 아들에게 와보지 않는다는 것은 아빠가 된 현준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였다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뿌리치고 달려올 것 같은데..'

돌아보면 부모의 이혼 이후 현준의 인생 자체가 그랬다. 모두가 다 각자의 사정을 핑계로 집에 홀로 남아 있는 막내에게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그때 현준에게 '그럴 수 있지 뭐' 라는 식의 어설픈 이해마저 없었다면 어둠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릴 수도 있을 만큼 위태롭던 시기였다.

아들이 넘어진 그 순간, 현준의 머리속에 그날 밤이 떠오른 것은 ‘가족애’가 가장 필요했던 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

'아빠는 날 사랑하지 않은 것이야.'

현준은 점차 그렇게 결론을 내려가고 있었다.

급속한 경제 발전의 시기를 관통한 가부장적인 우리네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늘상 하는 변명이 있다.

“나는 더 받은 사랑이 없어~ 받은게 없으니까 어떻게 주는 지를 몰랐어~ 그건 너네가 이해해줘야해~”

현준은 이 소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경멸했다. 자식이 생기자 더더욱 말이 안된다 생각했다. 본인이 못 받았기에 나는 줘야겠다라고 현준은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저 말이 참이라면, 세상에 사랑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비록 나는 받지 못했더라도 그것을 줄 수 있는 것, 오히려 그 결핍이 더 큰 사랑으로 피어날 수 있는 것, 현준은 그럴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

‘탁 탁, 슈우웅~~’

두돌이 갓 지난 자그마한 생명체가 어쩜 저렇게 킥보드를 잘타는 건지 현준은 매일 보면서도 신기했다. 날이 갈수록 속도가 빨라져 쫓아 가려면 이제 현준도 꽤나 빠르게 달려야만 했다.

앞서가던 아들이 잠깐 멈춰 현준을 돌아봤다. 현준은 그 모습을 보고 얼른 뛰어가 아들을 안아 올렸다.

“비록, 그랬지만, 난, 절대,,”

현준은 다짐하듯 작게 읊조렸다.

“미욕?”
아직 말이 서툰 아들이 되물었다.

“응! 비록!”

(15.0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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