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퇴고3
<사랑일지(A love diary or Is it love?)>
2016년 5월 5일
약속했다. 힙합이 흘러나왔고 파란색 술을 마시며. 확인했다. 지하철로 걸어갔다. 데려다 주고 집에 가는 길 지하철에 비친 나의 모습은 낯설었다. 히죽히죽. 다시 회상했다. 고백 대신 나는 나의 일기를 보여줬다. 내 일기는 주제가 없이 흘러가다 너로 끝났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가방에 일기장이 있었고 보여줬다. 그간 썼던 것들을. 같이 지내온 1년이 다 적혀있었다. 매일 적진 않았지만 쓸 때마다 너의 얘기 뿐이었다. 일기를 쓴 게 아니다. 어떤 속 풀기 용이다. 일기는 뒷전이었다 사실은.
2016년 8월 9일
비가 온다. 비 오는 날 나가기는 정말 싫다. 신발이 다 젖고 양말도 다 젖는다. 찝찝한 건 딱 질색이다. 비가 오는 날엔 집에서 나가지 않는 게 나의 원칙이다. 너에게 전화가 왔다. 저번에 얘기했던 농구 대결을 하잔다. 일단 나갔다. 장난이겠지. 아니면 실내에 농구 할 장소가 있나 보다 하고. 다이소 앞에서 만났다. 각오를 다진듯한 표정의 여자가 서 있었다. 뭐지. 처음 보는 진지한 눈이다. 너무 진지한 모습에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결국 야외 농구장에서 대결을 시작했다. 핸디캡을 줬다. 한 손만 쓰기. 한 손만 쓴다고 해서 결과에는 영향을 끼칠 수 없다. 하지만 너의 눈은 너무 슬퍼 보여서 져 줄 수밖에 없었다. 끝나고는 물었다. ”왜 비 오는 날 농구를 하자는 거야?“ 너는 대답했다. 그래야 이길 수 있을 거 같았거든 졌으니까 소원 들어주기야!”
2016년 8월 18일
원망했다. 계속 잠만 잤다. 낮에 일어나고 낮에 잤다. 눈이 아파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무감각했다. 일단 담배를 샀다. 마일드세븐. 내가 아는 담배 중 가장 독한 담배이다. 캑캑 대며 한번에 여덟대를 피웠다. 무심히 집 앞 가로등은 나를 비췄다. 집에 들어가서 생각만 하다가 잤다. 눈을 감았지만 사실 잠은 오지 않았다. 생각에 생각 꼬리를 물었다. 내가 잘못한 점에 대해서 생각과 생각. 표정이 바뀐 그날에 대한 생각. 나의 존재를 의심했다. 결국, 너는 소원은 빌지 않았다. 소원이 이건 아니겠지.?찢어졌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실감이 안 나서 일주일 정도 멍했다. 영화를 보는데 또 잠이 왔다. 분명 하루종일 잤는데도.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야지. 상실감도 질린다 이제는. 낮에는 후배 이름을 부르는데 잘못 불렀다. 너의 이름을 불렀다. 아 아직도 남아있구나 일주일은 너무 짧았나.
내게 말했다.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사랑은 유리잔 같은 거라고. 유리잔이 깨졌다며 깨진 유리는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거라고 떠났다. 마음껏 상상할 수 있을 때 상상하려고 상상을 참았다.
2016년 8월 23일
9:50분에 일어났다. 10시 출근인데. 일어나자마자 양치도 못하고 출근했다. 18시 퇴근하기 전까지는 의미는 없다. 생각을 비우고 일만 해서. 문득문득 망상과 생각이 떠오르지만 사소하고 의미 없는 것들이라서 무시했다. 바쁘고 단순하게. 생각은 거의 게워냈다. 머리가 조금 아팠다.다음 주에는 제주도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러다 결국 잠에 든다.
2016년 8월 30일
제주도에 도착했다. 밤에 도착했다. 제주는 생각의 땅이다. 숙소는 협재 해수욕장 근처로 잡았다. 일찍 자야겠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 수영을 할 것이다. 물에 있으면 자유로워진다. 자유형이나 배영이 아니라 일단 물에 뜬다. 그러면 코, 눈 이마만 물 밖에 나와 있고 귀는 물속에 담겨있어 웅웅거리는 소리만이 들리고 눈으로는 맑은 제주 하늘만을 볼 수 있을 테지. 얼른 자자.
2016년 8월 31일
아침에 바다로 향했다. 바닷물은 조금은 차가웠다. 네가 말한 유리잔에 대해서 생각해보려 바다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모든 상상을 정리한다. 다음은 상상의 내용이다.
너는 우리 관계에 금이 간 것이 아니라 산산조각이 나버려 고칠 수 없다고 했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주워담을 거야. 유리의 조각들을. 모래사장에 뿌져져있는 유리의 조각들을 찾을 거야 하나씩 하나씩. 가끔 손톱 밑에 피가 나겠지. 피가 굳기 전에 모래에 다시 손을 집어넣어. 몰려오는 파도에 모래를 씻으려 손을 넣으면 정말 시큰거려. 그럴수록 더 빨리 모래 안에 조각들을 빠르게 찾아. 밤이되면 찾을 수 없어 달에 구름이라도 끼는 날에는 너무 캄캄해서 모래에 손을 넣고 뭔가에 찔려면 그걸 통에 담아. 주워담을거야 찢어진 유리 조각들을 다시 이어야만 해. 꼭 해야만 해
상상이 끝나니 몸이 심하게 떨렸다. 너무 추워서 몸이 얼까 두려워 숙소로 향했다.
오늘의 상상은 의미가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자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데 각자의 사랑이 정말로 궁금했다. 나와 조금이라도 다르다면, 나만 아픈 거라면 나는 죽어 버릴 것이다.
2016년 9월 1일
대구로 왔다. 집으로 쏜살같이 튀어가 책상에 앉는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마지막인 나의 편지는 너에게 닿길 바라면서 적어본다.
항상 푸른 색의 술을 먹는 네게
나는 네가 죽길 바라. 좀 더 정확하게는 너의 존재가 없었으면 해. 마음대로 떠났으면 나의 눈앞에는 절대로 절대 나타나지 않았으면 해. 길을 가다가 조금이라도 너와 비슷한 형상의 사람이 눈에 띄면 전화기부터 찾아 전화하는 척을 해. 네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야. 만약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나면 나는 필사적으로 모른 체할 테야 그런데 나에게 아는 척을 한다면 나는 도망갈 거야. 아주 멀리. 여름이 아니라 겨울만 있는 곳으로. 사회와 단절된 곳. 마당에는 나무와 눈만이 있는 곳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눈으로 다가와서 떠날 때는 모든 것을 정하고 아는 사람처럼 아주 단호했지. 모든 걸 줄 거 같더니 결국 모든 것을 빼앗아 갔지.
떠나니까 알게 되었어. 사랑을. 이제는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되었어. 이 편지이자 일기이자 일지는 꼭 너에게 전해졌으면 싶어. 나는 이 종이책은 절대로 다시 피지 않을 거야.
사랑에 대한 정의는 아직도 하지 못 하여서. 하지만 몰려온다는 것은 확실히 알아. 거칠고 때로는 고요하게 바다 위 파도처럼. 그럼 나는 몸에 힘을 뺀 후 물 위에 떠 있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지.
너는 꼭 멀리멀리 떠나.
(15.3매)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