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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3
<두 얼굴의 사랑>
이게 과연 사랑일까? 주저 없이 ‘사랑한다’는 말부터 나오는 사랑이면 좋으련만, 쉽게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사랑도 존재한다. 난 사랑이 상대를 존경하고, 우러러보게 되는 그런 깨끗하고 맑은 마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사랑에는 덕지덕지 반창고가 붙여 지기도 했다. 난 이 사랑의 양면성을 우리 할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던 탓에 어릴 적 나는 외할아버지 댁에 자주 맡겨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나뭇잎만한 손은 할아버지의 거인 같은 손에 꼭 포개진 채, 함께 시장에 갔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짜장면과 뻥튀기의 맛을 처음 알려주셨고, 옥수수를 먹을 때면 손수 하나하나 알을 발라내 나의 입에 쏙 넣어 주시곤 했다. 시장에서 옥수수를 튀기는 굉음이 들려올 때면 언제나 내 귀를 막아 주시는 다정한 할아버지였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알기도 전, 어린 나에게 사랑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셨다.
그런 우리 할아버지지만, 언젠가부터 마음 한구석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미운 마음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건 할아버지가 그리 좋은 남편과 아빠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였다. 어렸을 땐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야’ 혹은 ‘여봐’라고 부르셔도, 할머니만 할아버지께 존칭을 쓰셔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머리가 커지면서 의문은 하나둘씩 생겨났다. 할머니는 이따금 할아버지를 대하기 어려워하시는 듯 보였고, 둘 사이에는 왠지 모를 벽이 느껴졌다. 가족과 친척들이 함께하는 모임에서 불편한 상황은 꽤 자주 만들어졌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할아버지는 서슴지 않고 할머니에게 화를 내고, 험한 말을 쏟아내셨다. 내가 알던 다정한 할아버지의 모습에 점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성인이 되고 엄마와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을 때, 엄마는 내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나에게 한없이 넘치는 사랑을 베풀었던 엄마가, 정작 본인은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사랑 대신, 오히려 두려움을 주는 대상에 가까웠다. 할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실 때면 엄마는 지레 겁을 먹곤 했다.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할아버지가 결코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할아버지를 향한 원망 섞인 질문들이 쌓여갔다. 나를 향한 따뜻한 미소는 할머니와 엄마에게 향할 수 없었는지. 그들의 마음속 상처를 왜 한 번도 돌봐 주지 않았는지.
이쯤 되면 그냥 사랑하길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일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할머니는 하루의 대부분을 집 앞 경로당에서 보내신다. 할아버지 식사를 챙겨 주시기 위해 집에 잠깐 들를 때 빼고는.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힘들게 할수록 할머니가 경로당에 계시는 시간은 늘어갔다. 할아버지는 “너희 할머니는 맨날 경로당에 간다”며 매번 서운함을 토로하시지만, 당신을 힘들게 하는 남편을 피해서 한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 할아버지를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지만, 달리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할머니의 최후의 수단이 아니었을까.
이렇게까지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의 거리감이 깊어진 데에는 할아버지의 몫이 분명 컸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할아버지를 그저 포기하고 미워할 수는 없었다.
“오랜만일세~ 할아버지한테 전화 못 할 정도로 바빴나벼?” 오늘은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더니 서운한 티를 내셨다. 한동안 전화를 못 드리긴 했었다. 마지막으로 전화 드린 게 10일 전이었으니까. 나에게 10일은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을 하고, 눈 깜빡 하면 지나가 있는 날들이지만, 온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할아버지에겐 긴 시간임에 분명했다. 항상 나의 전화를 기다리시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언젠가 내게 말씀하셨다. “난 안 가본 곳이 없어~ 일본, 중국, 이태리.. 다 나와 다.” 세계테마기행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었다. 간접적으로 세계 일주를 하셨으니 직접 안 가봐도 다 안다는 말씀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시렸다.
이제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텔레비전 앞에서 홀로 방구석 여행을 하시거나, 그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계시는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할아버지가 떠오를 때면 외면하고 싶다가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향한 나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살고 있다.
나는 과연 할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마음은 대체 뭘까? 어쩌면 이것은 내가 받은 사랑에 보답하려는 마음, 혹은 외로운 사람들을 보았을 때 느끼는 자연스러운 인류애적 감정이거나, 손녀로서의 의무감에 의해 비롯된 관심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모이면 결국 그것은 사랑이 아닌가. 따로 떼어보면 평범한 얼굴을 한 감정들이지만, 나열해 보니 그럴듯한 사랑의 형태 같았다. 어차피 사랑은 내가 만들기 나름인 것이었다. 이것은 결국 할아버지를 향한 내 사랑의 모양이겠거니 하는 결론에 다다른다. 단순한 감정으로 정의 내리기엔 너무 복잡하고, 끈끈한 이 감정은 분명 사랑 그 비슷한 것이다.
그래서 난 이해할 수 없어도, 때론 미워도 할아버지를 사랑한다. 그 사랑이 비록 덕지덕지 반창고가 붙여진 모양일지라도 말이다. 엄마와 할머니를 향한 나의 사랑은 불가피하게 할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를 향한 마음을 결코 끊어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난 이 글을 쓰며 할아버지를 향한 나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했던 할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다른 마음으로 애써 덮어보고, 그렇게라도 계속 사랑하려는 나를 보며. 어쩌면 사랑은 그 반대편에 있는 마음을 눌러가면서라도 이어가려는 마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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