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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글쓰기란?

글쓰는 일에 대한 내 부끄러움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천사에게 갈것이라 알고 있었던 나의 편지가 사실은 같은 성당에 다니는 어느 멘토에게 도착했을 때였을 것이다. 의젓한 고등학생 형이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건낸 답장은 충분히 따스했을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그 편지가 내게 남긴 것은 위로의 감동보다는 날 것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켜버렸다는 수치심이었다. 정말 내 편지가 천사에게 갈 것이란 순진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누군가에게 읽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날 내가 겪었던 당혹감은 지금도 ‘네가 일기를 편지로 쓴 죄를 알렸다’하며 불쑥 떠오른다. 이제는 그런 순진한 시절의 내가 아니기에 안심할 수 있는 곳에만 떠오르는 생각들을 풀어놓는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둔 일기장은 아끼는 소품들을 넣어두고 열어보지 않는 상자 같다. 쓰는 행위가 주는 안정감, 감정 배출의 시원함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누군가에게 닿을 편지를 쓸 생각은 하지 않고 나만 보는 일기를 써왔다.
그래놓고서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서, 때로는 마음을 휘저어놓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자주 읽는다. 잘 쓰고 싶어서 읽는 것은 아니지만 잘 쓰인 글을 읽다 보면 내 생각도 이렇게 정련해낼 수 있을까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내게 자주 반복해서 나타나는 감정과 기억, 사건들을 말끔하게 담을 수 있다면.
초고가 완성본인 일기와 달리, 읽히기 위한 글은 다듬는 작업이 수반되는 일이다. 어쩌면 그런 글은 ‘진짜 세상’이 아닐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내가 매혹되는 글은 늘 완전한 세상을 담은 글이 아니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곳까지 시야를 열어주는 ‘만들어진 세상’이었다. 다른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재료들을 부수고 이어붙이는 과정에서 끄덕임을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고, 진저리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나중에는 내가 만든 작은 세상에서 일기도 편지인척 뻔뻔하게 내놓을 수 있겠다는 상상도 해본다.
아직 타인 앞에 글을 떡하니 내보이는 건 어려운 일이므로 별명에 기대어서 쓰는 일에 대한 생각을 풀어본다. 내게 쓰는 일이란 이제껏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영역을 만드는 것이었고, 앞으로 나아갈 쓰기는 내 조각들을 만지작거려서 작게나마 세상에 내놓아보는 일이 될 것이다.

(5.7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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