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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일은 내가 주로 읽는 글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최근 한해 동안 읽었던 목록과 읽고 난 후에도 곁에 두고 싶은 목록을 추려본다. 이디스 워튼, 에밀 졸라, 슈니츨러, 피츠제럴드, 배수아…. 가만히 이들을 살펴보면 현대와 주변의 이야기를 재현·반복하며 공감을 유도하는 글에는 통 마음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읽는 순간을 생각해보더라도 비슷한 맥락이 반복된다. 마음이 힘들 때일수록 더 치열하게 읽었던 것 같다. 이미 충분히 겪고 있는 사회생활 같은 글, 평소에도 생각할 수 있는 내용들은 오히려 가까이 하고싶지 않았다. 19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작가가 세계관을 창조한 소설을 많이 읽었고, 현대 작품도 자연스럽게 해외문학을 중심으로 읽게 되었다. 사실 (배수아를 제외하면) 내가 좋아하는 이 작가들이야말로 그 시절 기준으로는 하이퍼 리얼리즘이었을지도 모른다. 19세기 어딘가에 정말로 있을 것만 같은 마을과 살아숨쉬는 듯한 사람들,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네 생각이 드는 풍속까지도.
그럼에도 시간이나 장소가 한발짝 떨어진 이야기는 판타지를 자극한다. 아무리 구체적으로 서술해도 내 머릿 속에서 상상되는 도피의 공간이자 나만의 공간이다. 좀 더 과감하게 말하자면 고증이 무너져도 내재적인 개연성이 있다면 아무렴 상관없는 세상이다. 그 속은 찰나와 같은 시간을 담을 수도 있고, 평생을 괴롭히는 고민거리가 담겨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존재할 수 없는 내가 어떻게 현실에서 한발짝 떨어진 글을 쓸 수 있을까? 언젠가는 내 언어로 이루어진 시를 쓰고 싶다. 아니면 시 같은 소설을 쓰고싶다. ‘시적’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읽힐 수 있으니 좀 더 부연해보자. 어느 글이든 구체적이고 완성도 있고, 선명해야 한다는 일상의 사고와 달리, 흐릿하고 비유적이어서 오히려 누가 읽어도 자기 자신을 생각하게 하는 글을 바란다. 내 글을 읽으면서 ‘나’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읽는 자신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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