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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는 감정을 설명하고 싶지도 피드백 받고 싶지도 않다. 나는 느끼니까 느끼고 느끼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생각해야 한다는 마음이 위험하다. 생각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진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가 할 순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렇게 해도 된다고 부추기는 거 말고 사는 방법을 알고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말에 속아가지고 사는 거 말고.
내가 나를 책임지자. 남한테 어떡하느냐고 하지 말고.

유성원, 성원씨는 어디로 가세요?, 난다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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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지 않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의심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의심이 결여되어 있다면(의도적으로 그렇게 보이려 한다면 이유가 궁금하다.) 무섭다. 글보다 태도가 중요하다고 느낀다. 글보다 밥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글보다 삶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최근에는 그렇다. 예전에도 그랬다. 글이 좋아서 글 때문에 살고 싶어도, 글 때문에 죽고 싶지는 않았다. 소설 쓴 사람이 만들어낸 세계가 멋들지게 보여서 소설 쓰고 싶었다. 지금도 소설 쓰는 사람 멋있다. 그런데 정말 멋있나 하는 질문은 주기적으로 하게 된다. 멋있다고 안 느껴지면 글 안 쓸 것 같다. 그건 두렵다. 글은 내가 가진 무기 중 그나마 가장 장악할 만한 것이다. 그러니 멋있지 않다고 글을 놓으면 장악하지 못할 무기만 늘어갈 것이다. 그러니 계속 쓰려면 어찌해야 할까. 그럼, 글을 노동처럼 여겨야 할 테다. 노동은 신성하다. 노동은 가치있다. 노동은 필요하다. 글에 이런 외피와 의미를 덮어씌우면서 쓸 테다.

그런데 그 덮어 씌움마저 유효하지 않게 될 때는 어쩌나. 그럴 때 난 이 글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외피와 의미를 모두 벗어던지려는 글. 나 말고는 다 너라서 끊임없이 되묻는 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가 마음 같은 건 없어서라고 지레짐작해보는 글.

이리 장황하게 적어놓아도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이 자주 바뀐다. 정반대의 글을 더 좋은 글이라고 여길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게 맞다. 그때는 그런 글을 쓰면 된다. 글쓰기에 오로지 중요한 것이 '나'라면 나는 계속 거듭될 테니까. 다른 사람을 의심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의심을 결여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무서움은, 어쩌면 내가 그리되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비롯된 무서움이 아닐까?

(5.8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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