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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

<10,000일째 잊고 있는>

길을 잃었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목적지를 잊은 게 아닐까

습관이 참 무서운 게
이미 열 정거장째 지나고 있으면서 왜 걷고 있지 싶고,
카네이션을 열다섯 해째 주문하면서도 꽃 색깔을 왜 고민하고 있지 싶고,
눈 뜨자마자 물을 마시는데 머리맡에 생수병이 없으면 왜 불편한지 생각하지 못했다.

약 10,000일째 나는 나를 넘고 있지만
매일의 나를 성실하게 잊어왔다.

반대로 생각하면,
목적이 있으면 방향이 달라져도 불안하지 않겠다.
경로가 달라진 걸 이미 알고 있는 건 목적을 전제하기 때문이고
사회가 정한 최적의 경로에서 틀어져도 다시금 복귀할 용기를 얼마든 충전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 하루의 수많은 행동에
늘 이유가 있는 건 아니겠거니 했는데
왜 그랬는지 그러는지 그럴지
어쩌면 목적이 없었을 수 있겠다.

(2.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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