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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얼굴

나는 소비를 참을 수 없어

나의 곁에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문화생활이라는 명목으로 쓰는 돈이 제법 많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00세 시대, 돈 없는게 가장 서럽다는 시대에 대놓고 취약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내가 얼마나 쓰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 액수를 털어놓겠다는 건 아니지만 소비를 자제할 수 없게 된 기원에 대해 거슬러가보려고 한다.
시작은 취업할 때부터였다. 검소함의 아이콘이었던 내가 학창시절부터 미루고 미뤄만 왔던 문화생활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된 이야기다. ‘1년만 하고싶은 일에는 다 써보자’ 했던 것이 몇 년이 지났다. 소비의 톱니바퀴는 커질 줄만 알아서 한번 늘어나면 다시 줄어들 줄을 모른다.
아주 많은 것들을 소비해왔다.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공연과 페스티벌을 보았고, 언젠가 읽을거라며 사는 책, 사용하지 않을 걸 알지만 소장하고 싶어서 사는 것들, 콘서트 티켓 값을 생각하면 한번만 들어도 본전은 뽑는다고 생각하는 바이닐 수집, 더 나열하면 심각해질 것 같으니 이정도까지만 하겠다.
그동안의 체험과 시행착오로 또래들에 비해서 꽤 선명한 취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한 놈만 팬’ 사람보다는 넓고 옅은 범위에 불과하다. 어느 분야에서도 알아먹는 척은 할 수 있겠지만, 어느 분야에서도 나서서 이야기 할 정도는 되지 못한다. 절제할 수 없는 것이 나의 자본적 멸망은 물론이고 취향의 깊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나아가 이런 소비생활은 합리적 사고의 유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10만원이지만 10년 쓴다면 1일에 27원만 부담하면 된다는 마법의 계산법, 10만원짜리 A 대신 5만원짜리 B를 사지 않고 8만원에 A를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논리적인 글이 나올 리가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행히도 미니멀리즘의 유행이라는 브레이크가 있었다. 왜 맥시멀리스트인 내가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을 굳이 읽고 시도하려고 했을까. 너무 많은 책을 앞에 두고 무엇을 읽을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내 집에 놀러온 친구들은 자다가 책에 깔려죽을까봐 걱정했다. 다행히 미니멀리즘 책을 쌓아올리는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처음으로 쌓아왔던 것들을 버리고, 판매하는 작업은 아주 길고 괴로웠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우선순위와 예산을 생각하지 않고 지출했던 것들을 되돌아보게 됐다. 많이 사봤기 때문에 실제적인 필요성과 가격 대비 만족도를 판단할 수 있는 많은 자료가 있었던 셈이다. 한번 해보고 싶다, 마음에 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출할 수 있었던 예전과 달리 필요성을 생각하고 시간과 돈이 아까운줄을 알게 됐다.
지금도 여전히 탐나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뛴다. 간편결제의 발달과 고비가 있기 마련인 직장생활은 보상 소비를 촉진한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면서도 꼭 필요한 것에만 쓰자는 방향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물론 버리지 않고 사기만 할 때는 몰랐던 것들이다.

(7.3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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