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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얼굴

절박하게 살아본 적 없습니다.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해본 적이 없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절박하게 살고 싶지 않았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절박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부모는 큰 병에 걸리지 않고 경제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풍요로운 노후생활까지는 몰라도 무리하게 투자하거나 자식들이 사업하기 위해 사업자금이 부족하다고 달려들지 않으면 소소한 노년을 보낼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내 몫으로 달린 빚도 아직 없습니다. 모아둔 돈이 많지는 않아도 몸 어디가 특별하게 아프지도 않으니 사치 안 부리고 헛짓거리만 안 하면 돈도 모을 수 있겠지요. 말도 안 되게 젊지는 않지만, 말도 안 나오게 늙지도 않았습니다. 때때로 아는 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 부러움도 샀습니다. 넌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구나. 그런 말을 듣고 있자면 스스로를 다독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렇지, 이 정도면 괜찮네. 절박하게 살다가 고꾸라지는 것보다는 낫네.
이처럼 몇 년, 아니 몇 달 전만 해도 실은 절박하게 살지 않았던 스스로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살던 대로 살았고, 하던 대로 했습니다. 이따금 간절하게 무언가를 욕망하거나 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자 하는 이를 속으로 비꼬기도 했습니다. 뭐 대단한 거 한다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래봤자 실패할 텐데. 아마 저와 얘기를 나눠본 누군가는 이런 제 속내를 눈치채고 더 이상 자신의 간절함이나 욕망을 드러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저를 뽑지 않았을 때. 내심 알량한 친분과 연으로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던 저에게 제출한 이력서에 간절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살던 대로, 하던 대로 그럼 나 말고 더 간절하고 절박한 사람을 뽑으라지 하며 비꼬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절박하게 살아본 적 없는 게 아니라 절박하게 살지 못 하는 거 아닌가. 절박하게 노력하는 이들을 비꼬지 않으면 저를 비꼬아야 해서, 저들보다 특출나게 뛰어난 점이 없으면서도 속 좋은 척 어깨나 으쓱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자신을 자신을 인정하는 게 괴로우니까.

(5.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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