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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얼굴
나의 약점은, 나의 맨얼굴, 뿐만 아니라 내 몸 가득히 자라는 모순의 질병이다.
어릴 적 나는 한 번도 친구를 집에 부른 적 없었다. 집에 사는 사람은 사실상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어쩌면, 친구들이 다른 사람을 나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를 일, 뭐가 됐든 나는 두 사람의 충돌을 일으킨 적 없었다.
여러 번 나는 죽은 사람들과 약속하곤 했다, 그 무덤의 이름들을 기억하리라. 대신 언젠가 내게 죽음 너머의 것을 보여줘야 해. 그러나 나는 어제 먹은 저녁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꾸만, 나는 죽음 너머를 상상한다. 사후세계를 믿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무언가 있겠지 하는 것이다.
약점들을 철저히 숨기고 살아야지, 그렇지만 바바리맨처럼 어느 날엔 사람들을 경악케하고 싶기도. 오늘 나는 약점에 대해 정말 솔직히 쓰고 있지만, 쓰면 쓸수록 느끼는 것은, 이건 나의 약점이 아니다. 나의 약점은 기록되지 않는다, 자꾸만 다른 곳으로 빠져나간다.
나는 여기 말해진, 말해지지 않은 약점들을 위로한다. 다들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거야. 아니, 나만 그런 걸지도 몰라, 어쪄면, 그랬으면 좋겠다. 모순을 떨치고 싶지만, 나는 계속 그것을 갖고 싶다. 어째서, 어째서... 나도 모른다. 나는 제목을 모르는 시 한 구절, 안토니오 마차도의 시 한 구절을 생각했다.
내 가슴에는
정열의 가시가 박혀 있었다
어느날 내가 그것을 빼냈다
이제 더 이상 내 가슴을 느낄 수 없다
나는 시를 쓸 때도 시의 의미를 하나씩 풀어 설명하고 싶은 동시에, 언젠가 아무 의미 없는 시를 쓰고 싶어진다. 그러나 오늘 나는 구차한 변명을 덧붙이며 시를 쓴다.
*독일 여행 때 있었던 일이다. 한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바이마르라는 도시에서 크란츠씨를 만났다.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프탈리라는 아이의 이야기를 소개해주었다. 나프탈리는 9살 때 부헨발트 수용소에 들어갔다가, 미군의 진군으로 해방되어 겨우 살아남았다. 그 후 그는 50년 동안 그 일에 대해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 크란츠씨가 두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어린시절의 나프탈리 사진과, 할아버지가 된 그가 인터뷰를 하는 사진이었다. 나는 강연 뒤에 그에게 사진을 한 번 더 봐도 되겠냐고 물었다가 결국 그 사진을 선물받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꼭 이날 들은 이야기를 잊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방 청소를 하다가 먼지가 쌓인 그 두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바이마르>
나는 가끔 그곳에 산다네.
잊을 수 없어 잊혀지는 날들에
베르테르와 괴테, 괴테 할머니가
던진다, 데굴데굴 행운의 실뭉치를.
너는 야옹하고 나타나 거미줄에
걸린 유령거미 풀어주는 발걸음.
너도 가끔 찾아오겠지.
정원집 창밖으로 난 그늘 아래
잠들지 못해 잠드는 날에 너는
내 죽은 눈꺼풀을 들어올리네.
저기 너도밤나무숲에서 두 사람이
오는구나. 크란츠씨와 누구, 누구였더라 나의
아홉 살짜리 동생, 누구였더라… 잊을 수 없어
잊혀지는 날의 짧은 소풍과
잊지 않겠다는 작은 허풍.
나는 가끔 그곳에 산다네.
소나기가 부르는 밤의 무대,
물에 잠겨 넌 달을 향해 날아가고
박자타는 손 어느 노인의 맥박이 되고
그루터기에 앉은 아이 목도리 두르는데,
그 아이가 분명
내 동생이야,
아홉살이면서 쉰아홉살인.
가끔은 정말 살고 싶단다.
잊을 수 없어 잊혀지는 날들에
파우스트와 괴테, 괴테 할머니와
크란츠와 아홉살, 쉰아홉살 동생과.
너도 가끔 그곳에 온다면, 찾아온다면
고양이처럼 야옹하면서 불러주겠니?
실뭉치 보고 “멈추어라!”하면서 불러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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