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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일하다가 다쳤을 때, 산재보험을 신청하는 게 그리 녹록지 않다는 점을요. 산재보험을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노동자도 여전히 많고,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와 관계가 껄끄러워질까 봐 자신의 건강보험으로 치료받기도 합니다. 조금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특정 병원을 지정해서 산재가 아닌 '공상'이라는 이름으로 치료합니다. 공상의 경우 당장 필요한 치료비는 내주지만 산재보험과 달리 이후 후유증을 치료할 수 없을뿐더러 증상이 악화되어 결근하면 임금을 보전해주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당시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산재 은폐가 일어나는 현실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신고가 들어오지 않은 이상 산재 은폐를 확인하기 힘들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부인하지 않는다"라고만 말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참혹합니다. 일하다 다친 5명 중 1명만 산재보험으로 치료받고 있는 현실을 두고서, 산재 은폐도 존재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아픈 노동자 중 극히 일부만 산재보험으로 치료받고 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김승섭,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p.24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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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글 중에 고르기 힘들어서 비교적 최근에 읽은 책 중 좋다고는 여겼는데, 베껴 쓰지는 않았던 글을 골라 베꼈습니다. 이 책의 주된 주제 중 하나는 세월호 참사와 천안함 사건 트라우마를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드러내고, 동시에 사회 전반에 만연하게 깔려 있으나 숨기기에 급급했던 다양한 트라우마들을 가시화합니다. 동시에 그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표와 통계에서 보이지 않는 이면까지도 이야기합니다. 저자가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슬픔을 받아들이려는 태도와 이런 태도를 뒷받침하는 담담하고 치우치지 않는 문장에서 우리, 혹은 우리라고 말하면서 배제하고 있는 다른 우리가 가 딛고 있는 한국 사회를 되짚게 됩니다.

(4.9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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