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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낮은 곳으로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 이정하

이 글을 필사하면서, 책을 펼쳐 띄어쓰기와 줄 바꿈까지 똑같이 따라 적었다. 이정하 시인의 호흡이 느껴진다.

입으로 조용히 읊조리다가 이내 마음속에서 낮은 목소리의 어떤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사랑은 얼마나 낮은 곳에 있었기에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는 표현을 쓸 수 있었을까.

뜨거운 노을이 불타고, 끝이 없는 바닷가 앞에 서 있는 한 남자가 떠오른다.

(2.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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