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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너한테 실망했어>

모나고 모난 나는 경계심이 심해서 그런지 잘 모르는 사람은 대개 안 좋아한다. 다만 그 사람이 내게 조금이라도 호감을 표현하면 경쟁이라도 하듯이 먼저 더 많이 그에게 정을 퍼주곤 한다. 속으로 안 좋아했던 그 잠깐이 미안해서 그만큼 더 많이 좋아하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할 때 대부분의 이유는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것이다. 컹컹대고 경계하다가 가까이 가면 꼬리가 부러질 듯 흔들어대는 시골 진돗개를 볼 때마다 꼭 나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람을 대하는 첫 번째 기준이 그 사람이 가진 나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보니 스텝이 자꾸 꼬였다. 그때는 실망했을 때가 서로를 알아가기 가장 좋은 순간이라는 것을 몰랐다.
실망은 그 사람에 대한 업 앤 다운 게임에 불과하다. 나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 업 다운으로 영점을 향해가는 것뿐인데, 나는 상대가 외치는 다운이 무서워 내 숫자를 바꿔갔다. 나를 너무 좋게만 보는 것은 나를 나쁘게만 보는 것만큼 안 좋다는 것을 몰랐다.
나를 한없이 좋게만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의 나보다 좋게 보는 것은 내버려 두고 나쁘게 보는 것을 바로 잡기에만 급급했다. 서로에게 현명하게 실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_문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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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빠둥이로서 작년 3월 3일 위 책 사운드 낭독회에 갔다. 상훈님을 직접 봤다. 한 시간 내내 옆 사람들에게 방해될까 그렁그렁 눈물 참느라 애썼다. 그래 마음 건강엔 호들갑이 좋다. 스스로에 대해 관조와 자조를, 미주와 각주를, 재생과 뒤로감기를, 응원과 자책을, 위로와 미움을 반복하는 행위가 틀린 게 아님을 증명 받았다.
기념사진 찍을 때 “상훈님, 덕분에 앞으로 살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살 것 같아요.” 했다. 사랑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광범위한지라 상훈님의 생각, 시간, 그리고 생각 닿은 지점이 어디까지인지 가히 짐작하기 어렵고 시도조차 미안하다.
빠더너스로 위로 받는다. 재미도 재민데, ‘이런 찌질한 상상을 너희도 한다고?‘ ’저 길티플레저 나돈데’ ‘부끄러움도 소중한 감정이야‘ 등 사회에서 나만 좀 모나보이고 누군가와 소통하는 게 불편한 성격을 뜯어 고치고 싶었는데, 문상훈만 보면 난 이상하지 않은 사람인 게 맞아버리니까. 사람을 훈장삼을 수 있을지 고민한 적이 여태 없었는데 30여 년 간 최종결재 받지 못해 밀려난 서류들이 차례로 결재되고 있다. 기쁘게도 나는 이제 문상훈을 최종결재자로 삼을 수 있다.

미움 받음이 싫어서 내 속 편하자고 지는 게임에 자진하곤 했던 나로선 뾰족함을 인정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치만 나도 이젠 내 흔적을 모래로 덮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한다.

(6.8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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