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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몸짓과 인상착의가 다른 이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겨줄 만큼은 아닌데, 보통 사람들이 전철에 오른 수많은 노인 가운데 유독 한 명에게 찰나 이상의 시선을 보낸다면 이유는 아마 그가 열차 끝 칸에서부터 쓸어온 신문 뭉치를 품에 안은 채 누군가 혹시 흘렸을 파지를 찾아 선반을 훑으며 서있는 사람들의 어깨를 치고 다니기 때문이거나, 보랏빛 점무늬가 날염된 항아리 팬츠와 고무신 차림으로 들어서자마자 갓 짠 참기름과 생강 냄새를 풍기는 커다란 보퉁이를 명백히 통행에 방해되게 바닥에 내려 놓고 그 옆에 보란 듯이 주저앉아서 아이구 아이구 앓는 바람에 결국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 같은 몸을 일으켜다 자리를 양보해야하기 때문이다.
구병모, 『 파과 』
거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보통의 글은 낱말로 시작하여 온점으로 문장을 맺는다. 구병모의 문장은 처음은 찾기 쉽지만, 끝을 찾기가 어렵다. 구체적인 묘사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단어로 꽉 채워진 문장은 한 바닥을 다 채울 때도 있다. 사람들은 담백하고 간결한 문장이 읽기 좋다고 하지만 구병모의 문장은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이런 문장 표현법을 만연체라고 한다. 많은 어구를 이용해서 되풀이하고 수식하며 부연 설명하기 때문에 장황하지만 깊게 상황을 전달할 수 있다. 만연체로 가득한 구병모의 문체가 좋다. 읽을 때마다 호흡이 턱턱 막히는 듯하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손을 잡고 온점까지 자연스레 끌어준다. 읽을 때마다 숨이 가쁘더라도 한 번쯤은 목 끝까지 숨이 차오르다 터져버리는 만연체를 구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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