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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독일로 단기유학을 가게 되었을 당시, 짐을 최대한 단출하게 싸기 위해 나는 책을 단 한 권만 가져가기로 결심했다. 그때 골랐던 책,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은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어려움을 갖고 있었기에 여러번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정말로 독일에서 난 이 책을 네다섯 번은 읽었던 것 같고, 필사도 세 번 했다. 그리하여 내 20대의 정신적 구조는 이 책 없이는 세워질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이 문장이 제일 좋다.
"나타나엘이여! 우리는 언제 모든 책들을 다 불태워 버리게 될 것인가!
바닷가의 모래가 부드럽다는 것을 책에서 읽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맨발로 그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감각으로 먼저 느껴보지 못한 일체의 지식이 내겐 무용할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풀밭 어디든 돗자리 없이 누웠으며, 바닷가든 호수든 수영복 없이도 팬티차림으로 뛰어들었다.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어서 그대가 길을 가다가 만나는 거지처럼 순간마다 그대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어찌하여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그대가 꿈꾸던 행복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대의 행복은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한다면 - 그리고 오직 그대의 원칙과 소망에 일치하는 행복만을 인정한다면 그대에게 불행이 있으리라."
사람들은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삼지만 행복은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즐거움'과 착각하고 있다. 즐거움은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의 감정이고, 욕구를 만족시켰을 때의 감정이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은 몰라도 즐거움은 확실히 얻을 수 있다. 행복을 '원하는' 것은 불가능에의 도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 불가능을 다 알면서도 행복을 부르짖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라 생각한다. *시는 불가능한 싸움을 거는 것이고 계속해서 실패하는 것이니까.
"나타나엘, 내 그대에게 '순간들'을 말해 주리라. 그 순간들의 '현존'이 얼마나 힘찬 것인지 그대는 깨달았는가? 그대가 그대 생의 가장 작은 순간에까지 충분한 가치를 부여하지 못한 것은 죽음에 대하여 충분히 꾸준한 생각을 지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 순간이, 이를테면 지극히 캄캄한 죽음의 배경 위에 또렷이 드러나지 않고서는 그런 기막힌 광채를 발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대는 깨닫지 못하는가?"
밤하늘에 별이 어떻게 저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우린 어떻게 저 별을 볼 수 있는 것일까. 그건 별이 매순간 스스로를 태우며 오랜시간 우리를 향해 빛을 보내주기 때문도 있지만, 별이 없는 칠흑같은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 주위가 환하면 별이 보이지도 않는다. 어느 날 나는 산 정상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로는 지고한 행복에 눈물이 따라다니게 되었다.
"사실 지상에서의 '소유'가 어느 것이든 내게 반감만 자아내는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것밖에 소유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나는 두려운 것이다."
만일 '소유'라는 개념이 없었더라면, '나'도 없고 '너'도 없을 것이고, '그들'은 더더욱 없고, 오직 '우리', 단 하나의 '우리'만 존재하지 않았을까?
*이성복 시인의 말
(8.2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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