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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

미용실 예약 시간은 한 시였다. 삼십 분 늦게 도착했다. 미용사는 느긋해 보인다. 손님 머리 자르고 퇴근해도 돼요. 오늘은 휴일인데, 그냥 열어둔 거였거든요. 별 뜻 없이 말했겠지만, 괜히 미안해진다. 어쨌든 미용실에 도착해서 좋다. 도착하기까지 헤매도 좋다. 도착해도 헤맬 수 있다면 더 좋다.
‘넌 좋은 게 좋구나.’ 하는 말 남들에게 자주 듣는다. 들으면 난 고개 끄덕인다. 그렇지, 좋은 건 좋은 거지. 좋은 걸 안 좋다고 말하던 때는 아이일 때. 괜히 좋아하던 아이에게 퉁명스럽게 말했을 때. 미용사가 자른 머리가 마음에 든다. 좋다. 아카시아 작약 장미 핀 거리가 선명하다. 좋다. 비정형적이고 불규칙한 모양과 문양의 그릇과 찻잔이 아름답다. 좋다. 선뜻 마음에 드는 그릇을 선물해 준다고 말을 듣는다. 좋다. 해는 서쪽으로 지고 바람을 내 쪽으로 분다. 좋다. 이주 전쯤 처음 펼친 책을 자정이 되기 전에 다 읽을 수 있다는 예감이 든다. 좋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안 좋은 것도 있다. 이런 장면이 있다. 공원에서 사람은 개를 산책시킨다. 개가 사람을 산책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은 목줄을 차지 않고 개만 목줄을 찬다. 이런 사실이 좋지도 않지만, 싫지도 않다. 때때로 이상하다. 인간이 인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아무리 다른 종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인정하고 사랑하고 아껴주고 쓰다듬어줘도 인간이라는 게. 이상한 것을 안 좋다고 여길 때가 많다.
이상하다고 안 좋은 것도 아니다. 이상해도 좋을 수 있다. 잠들기 전에 책상에 앉아 배경음악도 틀지 않은 채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쓴 책을 읽는다. 이상하다. 근데, 좋다. 방 안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소리가 들려 선풍기를 켰다가 이제 선풍기 소리 말고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아 선풍기를 끄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상하다. 좀 찝찝하지만, 어쨌거나 좋다. ‘넌 이상한 게 이상하구나.’ 이런 말 아직까지는 들은 적 없다. 들으면 신선하고 이상할 같다. 좋다.
이쯤 쓰니 싫어하는 걸 쓸 생각이 없어졌다. 생각은 있어서 없어질 수 있다. 하지만 글로 안 나온다. 싫은 것을 쓰면 ‘싫은 게 싫은 거구나.’ 하고 더 안 붙잡고 있을 것 같다. 아, 지금은 싫은 걸 쓰는 걸 싫어한다. 종결.

(5.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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