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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

<좋아하는 것1>
내 가족들이 제사상에 치킨 한 마리
의심없이 올릴 수 있도록
나는 매주 치킨을 시켜먹는다

<좋아하는 것2>
책의 좋음의 척도는
책을 읽으며 참은 오줌의 양이다

<좋아하는 것3>
눈물은 펑펑 흐를 때보다
조금 맺힐 때가 좋다

<싫어하는 것1~3>
살생, 현학, 동정

<좋음과 싫음 사이의 것>
1. 그날 모두 동시에 같은 전화를 받았다
2. 책상 다리 밑에서 균형을 맞추는 동전
3. 진실의 입은 거짓만 삼키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대리석 가면 조각

오프라인에서 여기까지 글을 썼다. 고치려고 해도 쓴 게 얼마 없어서, 나는 위에서 쓴 <좋음과 싫음 사이의 것>을 발전시켜 시를 하나 새롭게 썼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시>

그날 모두 동시에 같은 전화를 받았다

방과후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프리스비 대신 각도기를 날리며 놀았다
각도기는 담장 너머로 날아가고
아이들도 같은 전화를 받았다

백반집 식당 아줌마가 잔돈이 모자라
상다리 밑에 쌓아둔 동전을 끄집어내고
상은 모서리마다 흔들거리고 아줌마도 같은 전화를 받았다

낮술 걸친 노인들은 공원에 나와
장기판에 훈수를 두다 판을 엎어버렸고
노인들도 같은 전화를 받았다

방과후 수업도 끝날 무렵 엄마는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아이 손을 잡고 끝말잇기하며 오르막길을 걸었다
카센터와 터미널을 주고받았어야 할 때
엄마도 아이도 같은 전화를 받았다

그날도 수십번 헌팅을 당한 여인은
내리막길 내려가다 맨홀 구멍에 힐이 빠졌다
어쩔 수 없이 맨발로 걷던 여인도
같은 전화를 받았다

우리는 같은 곳으로 모였다

하늘에서
각도기가 세상에 없는 각도로 빙빙 돌다가
그곳에 떨어졌다

(4.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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