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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

<당신이 내게 양보한 것들>

누군가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습관처럼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내가 싫다고 하는 것만 안 하면 돼."

싫은 것만 말하다보니 싫어하는 게 자꾸 늘어났다.

사람이 붐비는 거리, 뒷사람과 등이 닿을 정도로 좁은 술집, 비가 오는 날의 약속, 끈적끈적한 식당 테이블, 얼룩이 있는 패브릭 소파, 먼지가 많은 날, 오래 걷는 것, 너무 잦은 연락, 오래된 차 냄새, 줄지어 기다리는 공중화장실까지.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 정도이니 싫어하는 것을 백 가지쯤 적는 건 일도 아닐 듯 싶다.

한편 좋아하는 것은 너무도 심플하다.

감자, 튀긴 음식, 돈까스, 커피, 와인, 위스키, 초콜릿,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의 포옹, 적당히 푹신한 소파, 빛이 나는 액세서리, 북적대지만 목소리가 잘 들리는 술집.

좋아하는 것에 비해 싫어하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다. 아마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위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약속을 잡은 날 날씨는 어떠한지, 예약한 가게의 분위기는 어떠한지, 오는 길에 불편함은 없는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파는 집인지,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 곳인지 등등

그리고 이러한 고민을 하면서도, 내가 약속에 응해줄지 또 한번 걱정했을 것이다.

이렇게 나를 배려해 주는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내가 싫어하는 고작 몇 가지들을 강조해서 말한 것이 후회된다.

싫어하는 물건이나 장소보다
좋아하는 사람 한 명이 더 소중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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