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퇴고

비가 촉촉하게 흙을 적시는 오후, 너무 굵지도 얇지도 않게 고요히 나는 잠겨있다. 축축히 내려앉은 공기와 빗소리에 난 마치 물이 되어 그들과 함께 생명을 기를 수 있을 것만 같다. 비가 온 뒤의 세상, 그 하루를 나는 좋아한다. 젖은 풀내음과 흙향이 숨을 편안하게 만든다. 평소에 가슴이 턱 막히는 순간들이 잊혀지는 찰나의 순간이다. 새롭게 씻겨져 태어난 모든 것들만큼 달콤하고 생기 있는 것들이 있을까. 씻겨진 것들이 아침 햇살에도 물을 머금으며 증발하고 있을 때, 그때가 나는 좋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또한 비 내린 다음날과 같다. 갓 태어난 것만 같은 순수하고 생기가 넘치는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하기 어렵거나 못하는 것들을 쉽게 해서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든 생기를 얻어 흡수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로 생생함을 좋아하고 원한다. 그것은 나이와는 관련 없이 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에너지 그 자체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 절망과 고통에도 사랑하겠다는 결심. 그런 것들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밝힌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선의의 거짓말? 뭐 필요할 수도 있다. 누가 거짓말을 하든 실은 내 관심 밖이다. 싫다고 해도 어차피 이 세상은 거짓말 없이 돌아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거짓말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거짓말을 내뱉는 자신의 입마저 이제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구분하지 못할 상황까지 온다. 아니, 정확하는 알면서도 철저히 외면하며 진실을 왜곡하고 꾸민다. 그것들이 익숙해지는 순간, 자신의 존재 또한 꾸며진 허상이 된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이 그렇다. 매력적이며 손쉬운 것은 리스크가 높다. 거짓말의 리스크를 정확히 파악하고 감내한다면 그나마 결과가 성공적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 거짓으로 이룬 성취가 누군가에게는 감옥이 아닌 달콤한 행복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허상이라도 전혀 개의치 않을 수 있다. 감옥 속에서도 웃음만 지으면, 그곳이 천국 아니겠는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거짓말은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거짓말이다. 그 목적과 이유가 타당하지 않는다면, 나는 끝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거짓말은 멈출 수 없는 폭포와 같다. 터져 나오는 진실이 나에게로 떨어져 숨을 앗아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한 만큼 쏟아진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 또한 사랑이다. 누가 나에게 미련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그래서 아름답지 않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깊이를 알려주는 것이.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6.4매)

3

2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