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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

계란후라이 하나 겨우 구울 수 있는 나이, 책장으로 둘러싸인 방 안에서 홀로 놀이 상대를 찾는 시간이 익숙했다. 내 눈에만 보이는 작은 투명 인간은 선생님이 됐다가, 가게 손님이 됐다가, 의사가 된다.

“어서 오세요! 손님 찾으시는 책 있으실까요?”

어린아이가 2평 남짓 되는 작은 아지트에서 책을 한 권 꺼내며 책방 주인이 된다. 남모를 투명 인간과 함께 커가면서 혼자 노는 방법을 알게 됐다. 어른이 된 나는 어린 나의 기분을 전부 담아두지 않았지만 어쩌면 심심이라는 이름을 가진 투명 인간과 놀았던 게 아닐까. 내 친구 투명이와 함께 걸어온 시간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투명한 친구를 곁에 두고 혼자 지내는 시간을 소중히 껴안으며 살고 있다.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좋다.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들고서 분위기가 아늑한 카페에 찾아간다. 혼자 있을 때 굳이 생산적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큰 의미를 담지 않고 나를 돌보기 위해 시간을 온전히 쏟아낸다. 멍때리며 바깥 풍경만 두 시간 보고 갈 때도 있고, 들고 간 책을 앉은 자리에서 한숨에 읽을 때도 있다. 여유와 고요함이 좋다. 그렇게 가만히 커피를 마시다 보면 휘몰아치던 내 속에 여유와 고요함이 들어찬다. 내 친구 심심이는 풍족이로 개명해 내 가슴 속에 살고 있다.

풍족이는 하나보단 둘, 혼자보다는 같이를 더 좋아한다. 내가 사랑하는 작품을 또 다른 누군가가 좋다고 할 때 정신줄을 놓으며 몇 시간씩 대화한다. 같은 작품을 감상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은 후배와 음악 취향 공유하는 것에 빠졌다. 그와 대화한 목록을 열어보면 온통 유튜브 링크뿐이다. 이 노래 좋지 않냐, 저 노래 내 취향이다. 매일 몇 시간씩 떠든다. 내가 미치는 노래 포인트를 그가 짚어줬을 때 세상 짜릿하다. 나의 감상과 그의 감상이 맞물릴 때 빨간 천을 눈앞에 둔 투우처럼 흥분된다.

좋아하는 것은 콕 집어 나열하기 쉬운데 싫어하는 것은 많아서 어렵다. 난 오이를 싫어한다. 남들은 여름에 오이만 먹어도 시원하다는데 난 그 시원한 냄새가 역하다. 오이 향이 근처에서 퍼지는 순간 스위치를 켠 것처럼 눈이 찡그려진다. 나의 오이 스위치는 태어나기 전에 엄마 뱃속에서부터 만들어졌다. 오이의 특유 향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유전자가 있더라. 유전적으로 몸이 거부하는 음식이 있다면 혹시 유전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을 수 있나? 뱃속에서부터 내 친구 심심이와 풍족이 같은 친구를 여러 명 품에 두고 태어나는 걸까.

앞으로 살아갈 시간 속에 갑자기 나타날 친구들이 기대된다. 얼큰이, 대담이, 편식이, 나댐이....

또 언젠가 사라져 잊힐지 모를 심심이와 풍족이도.

(6.7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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