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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2
재윤은 답답하다. 수빈은 여유롭다. 그들은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오랜 친구다. 이 둘은 비슷한 삶의 궤적을 지난 뒤 같은 대학에 진학했다. 학교는 동네 밖 멀리 있었다. 재윤은 학교까지 2시간 거리를 통학했다. 왕복으로 4시간. 수 많은 시간을 길에 버리고 있는 재윤을 수빈은 이해하지 못했다. "너도 근처에 전셋집 얻어"라며 쉽게 말하곤 했고, 그럴때면 재윤이는 답답했다.
수빈은 착한사람이다. 악의가 없다. 모자란것이 없는 유년 시절을 보내서 그럴까. 필요하다면 모든것을 다 해주실 부모님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사치스럽게 크지도 않았다. 수빈은 학교를 걸어서 다녔다. 산책삼아 걷기 좋았다. 수빈의 자취방에서 현관문을 열고 나와 학교 강의실의 문을 열기까지 고작 30분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수업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도착하기 일쑤였다.
재윤, 이름의 뜻을 보자. 재물 재(財), 허락할 윤(允). 부모님의 의지가 많이 반영된 이름이다. 그래서 돈은 많이 벌었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그저 희망 사항을 적어놓은 것 같다.
수빈, 이름의 뜻을 보자. 빼어날 수(秀), 재주 빈(斌). 이름 그대로 수빈은 재주가 많다. 피아노를 잘 치고 그림도 잘 제법 잘 그린다. 수영도 스키도 테니스도 어렸을 때 조금씩은 배웠다고 한다.
둘은 편의점에 갔다. 그리고 냉장고 앞에 나란히 섰다. 이들은 둘 다 콜라에 시선이 머물렀다. 이럴때면 재윤은 늘 펩시를 고르는데, 음료회사들의 미묘한 가격 정책으로 인해 펩시가 코카콜라보다 항상 100원 더 싸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 펩시는 2+1행사 중. 그래서 수빈도 펩시로 골랐다. 둘은 콜라 3개를 들고 나와 편의점 앞 벤치에 걸터앉았다. 달고 시원하고 칼칼한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재윤은 어제 본 영화 이야기를 했다. 마침 수빈도 얼마 전에 본 영화였다. 재윤은 어제 본 영화의 문제점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이는 늘 상 있었던 토론으로, 보통은 의견이 동일할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 둘에게 물어뜯긴 감독이 너덜너덜해질 때쯤 음료의 바닥이 보였다. 일어설때였다. 재윤은 남은 펩시를 양보했다. 수빈은 미지근한 펩시를 받았고, 고맙다는 말과 맑은 미소를 잊지 않았다.
학교로 되돌아 가는 길. 걸어가며 생각했다.
재윤은 답답하다. 학점을 떠올렸다. 장학금 받으려면 몇 학점이 넘어야 하더라? 시험이 얼마 안 남았으니 이제부터 얼른 준비해야겠다.
수빈은 여유로웠다. 주말에 벚꽃 구경 가야지. 산책 후에 해가 지면 맛있는 것도 먹으면 좋겠다. 누구랑 갈까? 재윤이한테 물어볼까? 아직 시험도 멀었으니.
둘 다 성적은 좋은 편이다.
날씨가 좋다. 교정엔 녹음이 푸르르다. 봄볕은 싱그럽고 시원한 바람에 벚꽃이 휘날렸다. 흩날리는 꽃잎은 재윤의 근심을 날려버렸고, 수빈의 결심을 앞당겼다.
기분 좋은 날이다.
(6.9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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