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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2

'돈' 하면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두 달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미술관에서 본 작품에 있었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성경의 한 구절이다. 난 개신교나 천주교는 아니다. 표현 자체가 재밌었다.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어보라든지, 방 안을 가득 채울 것을 사오라든지 하는 느낌이다. 괴짜스러운 면접 심사관이 할 법하다. 그 사람은 분명 부자겠지. 모든 학문의 교수들이 모여서 의견을 낼 것이다. 이론적으로 낙타를 바늘귀에 통과시키는 방법을, 또는 그 방법의 실현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더 웃긴 건, 냉장고 코끼리는 이론적으로 정리된 나무위키 항목도 있다는 것이다. 낙타 바늘귀는 아직 없지만. 다만 '낙타'가 오역이라는 주장은 있다. 낙타(gamla)가 아니라 밧줄(gamta)이라는 것이다. 이거나 그거나... 낙타가 더 상상하기엔 재밌지 않나. 이걸로 소설 한 편을 써도 좋겠다. 사하라 사막 어딘가에 바늘귀보다 작은 '바늘낙타'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면서, 약간 나사 빠진 부자들이 그 낙타를 찾아서 탐험을 떠나는 것이다. 한 손에 바늘을 들고 떠나는 것이다. 떠나는 과정에서 돈을 탈탈 잃는 사건들이 있어야겠다. 사기를 당한다던가 살인을 당한다던가. 결국엔 거지가 된 주인공 혼자 남아 사막 한복판에 쓰러지는데, 저 멀리 지평선 끝에서 낙타가 다가온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바늘을 눈에 대고 바늘귀를 통해 낙타를 본다. 교훈이 좀 시시콜콜하지만 잘 쓰면 재밌을 것 같다.
부자가 싫은 건 아니다. 부자가 되기 싫은 것도 아니다.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냥 '부자'라는 단어가 어딘가 좀 웃기지 않은가.

거지도 마찬가지다. 거지가 싫지 않다. 거지가 되는 건? 되고 싶어서 거지 된 사람은 딱 한 명 생각난다. 소크라테스 제자 중에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가 있다. 견유학파의 대표인물이다. 견유는 개 같은 선비라는 뜻이다. 다 내팽개치고 길거리에 나무통 속에서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요즘 시대에 나무통 속에 들어가는 건 통아저씨 밖에 없지 않을까.
어쨌거나, '거지'라는 단어도 내겐 조금 웃기다. '거지'라는 단어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동냥그릇이다. 길거리에 동냥그릇을 앞에 올려놓고 정수리 보일 정도로 머리를 박고 꿇어있는 거지의 모습. 실제로 번화가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나는 그냥 지나간다. 할거면 기부를 하지 구걸을 받아주긴 싫다. 그런데 지나가면서 가끔 발칙한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동전이 한 대여섯 개 들어 있는 동냥그릇을, 뻥 차버리는 상상. 어떤 소리가 날지 궁금하다. 그릇(스댕이어야 할 것)과 동전들이 맞부딪치며 떨어지는 소리. 거지는 머리를 박고 있어서 뒤늦게 알아차릴 것이다. 그때 거지는 돈을 주우러 갈까? 찬 사람을 잡으러 갈까? 이걸로 시 한 편을 써도 좋겠다. 소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필요할 것이고, 거지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거지는 범인 잡겠다고 경찰서에 갔다 / 거리엔 동전들이 목격자처럼 반짝였다' 이렇게 끝내면 어떨까. 범인을 쫓지도, 돈을 줍지도 않는 선택.

(7.8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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