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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루다
매일 기도를 한다고 했던 선생님은
정말로 매일 기도를 했을까?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기억이 거의 없다. 부분적인 장면들은 어느 정도 기억나지만, 맥락이 없다고 해야 하나.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도 확신이 없다. 그래도 초등학교 6학년 때쯤 되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다. 그때 만났던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만나고 있고, 그때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으며 처음으로 고백했다가 차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정말 유치하고 엉성한 감정을 한 친구에게 표출한 건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말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때의 난 왜 그런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어렸다는 말로는 잘 설명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지금도 사실 그때보다 얼마나 더 성숙해졌는지.
일 년 전쯤 그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얼버무리며 사과를 전했으나 정작 그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더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선생님을 만나러 갈 사람을 찾기 위해 나에게 연락했던 그는 선생님과 만남 이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도 먼저 하지 않았다. 누구도 연락하지 않으니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았고, 난 그런 예감이 들었을 때 이상하게 그 친구를 더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곧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 한편으로는 만만하게 생각했던 사람. 인자하게 웃다가도 호통을 칠 때는 제법 무서웠지만, 딱 한 번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쪼잔하고 애매한 방식으로 사람을 괴롭히는데 아이들은 능했으며 진심이 담겨있지 않는다고 해도 선생님에 대해 꽤 험하게 말했던 걸 기억한다. 나만 거기서 꼿꼿하고 고고했다는 건 아니다. 나도 동조했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같이 웃었으니까. 맞장구도 쳐주고, 때로는 거들기도 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은 자기가 맡은 아이들에게 고루 자기가 가진 사랑을 나눠주려고 했다.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아이들도 몇 번은 선생님의 사랑에 넘어가는 듯 보이다가도 결국 원래대로 돌아가긴 했으나 그런데도 6학년이 끝날 때까지 선생님은 꼿꼿하게 자신의 태도를 유지했다. 아이들에게 절대로 소리를 지르거나 매를 들지 않았으며 아이들이 먼저 선생님을 놓기 전까지는 선생님은 아이들을 놓지 않았다.
그 나이 때쯤 되면 선생님처럼 저절로 평정심과 이해심이 생기는 건가 했지만, 그 나이 때의 사람들을 두루 만나보고 나니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저절로 늙어가지만, 그게 꼭 성숙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사람은 세상이 내놓은 변화무쌍과 만찬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불합리하고 이상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끝내 그렇게 되어버리는 과정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선생님도 그런 모습을 내비쳤을 수도 있다. 단지, 내가 그렇게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선생님을 열심히 미화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존경할 만한 사람을 만들기 어려워질 테니까. 편협해지고, 배우려고 하지 않는 태도로 굳은 채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다짐이며 세상은 딱히 나의 이런 다짐과는 상관없이 폭발적으로 흘러간다. 나는 겨우 휩쓸리지 않으며 현상 유지하는 데 만족하면서 살아가야 할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 선생님도 이런 시기를 통과하셨을까? 그런데도 그렇게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는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건지, 그때까지 살아보지 않으면 모를 일일 것이다.
졸업식 날. 선생님은 들뜬 아이들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봤다. 우리는 빨리 교실 밖을 뛰쳐나가고 싶어 했다. 장전된 탄환처럼 빨리 아무 곳에나 발사되고 싶은 마음을 품었을 수도 있다. 학교는 너무 좁고, 답답했으며 어쩌면 시시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보다 앞서 학교의 좁고, 답답하고, 시시한 점을 짚어주며 더 넓은 곳으로 가라고 했다. 이곳에서 결정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 난 그 말이 좋았다.
빨리 교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선생님은 마지막 인사를 꺼내는 데 주저하고, 끝내는 살짝 눈물까지 보였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매일매일 기도해서 우리가 잘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도 나를 위해 기도를 하지 않는데……’ 처음 들었을 때는 반항심이 들었던 말, 그런데 선생님의 얼굴을 보자 정말로 선생님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왜 그런 직감이 들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매일 기도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그건 너무 따뜻해서 외면하고 싶은 모습이기도 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마저 덧붙이고.
다시 만났을 때 매일 기도를 하고 있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아마 영원히 묻지 않을 것이다.
(11.5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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