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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루다

글쓰기 모임을 참가했을 때 받은 글 중에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훌륭한 것은 그 문장과 별 상관이 없다. 그들은 문장 연습을 거듭한 문필가도 아니다. 그들의 자아가 훌륭하므로, 이를 그대로 드러낸 그들의 글도 훌륭하다.
여기에 이르러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이 분명해진다. 글에 담기는 자아를 훌륭하게 갈고닦으면 된다.”

사실 글의 문제가 아니라 자아의 문제인 거죠. 제가 솔직하게 일기를 적어내는 것도 여기에 있네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 같습니다. 이전에 친구가 제 일기를 보고 “반다이랑 000(실명)은 좀 분리시킬 법 하지 않나”라고 했네요. 아무래도 방송도 하고 나름의 이미지 관리(??)도 하고 있으니까..

착한 척 깨어있는 척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랬으면 자기 비하나 가정사 같은 거 안 적었겠죠. 항상 제 얘기엔 자신이 없고, 내가 틀릴 수도 있고. 실컷 적어놓고 마무리할 땐 한 걸음 뒤로 빠집니다. 결국 전부 그냥 ‘내 생각’임을 강조하고. 나도 아직 부족하다는 식으로 쿠션 한 번 깔아주는 겁니다. 회피충이라 댓글도 막아놨습니다. 평가하지 말라고.

글쓰기 카페의 피드 글도 냅다 좀 훔쳐오겠습니다.

“좋은 글은 읽히는 글입니다. 읽히지 않는 글, 존재 이유가, 가치가 없습니다. 첫 문장부터 마지막까지, 적어도 중간 언저리까진 읽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쓴 사람 손을 떠나도 글이 생명력을 갖고 야금야금 절로 생존하게 됩니다. 솔직하게 쓰면 됩니다. 그것도 “무례할 정도”로 쓰면 됩니다. 그러면 읽힙니다.”

조합해보면 “무례할 정도로 솔직하게 썼는데 자아가 훌륭해야 함.”
아니 이거 이번 생에 가능한 거 맞나..

사람에게 미움받는 걸 극도로 무서워하는 사람이라, 계속 좋은 사람이 되려는 건 사실 하나의 자기방어기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생각을 고치는 게 아니라, 미움받기 싫어서 고치는 겁니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결과적으로 좋은 거면 된 건지..

근데 개인적으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알맹이까지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인 ‘척’까지는 어찌저찌 가능한 것 같네요. '좋은 사람인 척'이 되는 사람들이 결국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좋은 사람’이 뭔지는 안다는 얘기니까요. 속으로는 무례한 생각을 한들, 그걸 입 밖에 내뱉지 않는 지성이 좋은 겁니다.

그럼에서 저는 좋은 사람인 '척'을 좀 더 잘하고 싶어서요. 막 나를 꾸미고, 감추고, 거짓말을 하고, 완벽한 모습. 뭐 이런 게 아니라, 약간의 인간미도 섞고, 부족한 모습도 보이고, 진심을 말하는 겁니다. 생각하는 전부를 말하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말을 빼고 일부분만 뱉는 겁니다. 어쨌거나 그건 지어낸 거짓말이 아닌 여러 개의 진심 중 하나니까요.

저는 완벽한 사람보다는 인간미가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 뭐든 열심히 하고, 선이 명확하고, 로봇처럼 완벽한 사람보다는 그런 로봇 같은 사람이 가끔씩 실수하거나, 전혀 안 할 것 같은 말을 한다거나,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거나, 우당탕 하는 부분이 좋습니다. 카페 사장님께 카페 고양이 사진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 뭐냐고 여쭸더니, 예쁘게 찍힌 사진이 아닌 고양이 엽사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도 예쁜 사진보단 엽사가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느낌인 거죠. 그래서 저의 부족한 모습도 계획적(?)으로 적어내는 겁니다.

솔직한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게 신기하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처음 들은 것도 아니고 몇 번 들었습니다. 그리고 모임에서 솔직한 글을 쓰는 게 어렵다는 글도 자주 보였습니다. 자기 자신한테도 거짓말을 하게 된다고. 딱히 제가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서 솔직하게 적는 것도 아닙니다. 앞에 말했듯 오히려 미움받아버리면 하루아침에 모든 계정을 잠수 탈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거짓말은 그만두자고 마음먹은 건 중학생 때입니다. 있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혼자 있을 때 목 놓아 울어버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향한 사랑하는 감정을 억누르지도 않고, 마음속으로 폭력성을 띄워버리기도 하고, 참으면 병으로 돌아온다는 걸 어린 나이에 알아버려서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속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요. 내가 나를 속일수록 갈 곳 잃은 감정은 스스로를 좀먹습니다.

캥기는 게 없는데 보여주기 부끄러울 게 뭐가 있겠나요. 남의 글이나 책 하나 읽은 적 없는 인간의 당당함입니다. 글을 안 읽어서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제 맘대로 지껄입니다. 비교 대상이 없으니까요. 좋은 글인지 창피한 글인지 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댓글도 막았으니까!! 글을 안 읽었다는 것도 당당합니다. 이게 바로 글을 안 읽은 자의 특권입니다 크하하ㅏ하 지금을 누려

완벽하고 있어 보이는 멋진 글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최대한 가볍게, 이왕이면 재밌게,
우당탕하고 서로 디스도 좀 하고, 동네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드르륵 칵 의자에 앉아가지고 수다 떠는 친구 같은 글이면 좋겠습니다.

(12.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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