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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루다
이젠 정말, 끝이 났다.
오랫동안 바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곳엔 단 한 번도 연필로 무언가를 기록한 적이 없는데,
이 기억만큼은, 이 시간만큼은,
언젠가 노랗게 바랜 종이 위 희미해질 글씨처럼 서서히 사라지기를 바라며,
그리되리라 믿으며 써 내려간다.
무엇이 끝났는지 굳이 정의하고 싶진 않다.
다만, 이제는 보고 싶어 울컥한다거나,
길을 걷다 문득 생각난다거나,
그림자 자국만 뒤쫓는 일은 없다.
한때는 떠올리면 후회되고, 가슴 아픈 기억이었으나,
이제는 고요히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한때는 잊지 못할 걸 알면서도 애써 괜찮다고,
그만하자며 스스로를 달래곤 했는데,
지금은,
후련하다.
비로소.
이제야.
그 시간 속의 나를, 우리를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깊은 감정을 가르쳐준 그에게 어쩐지 고맙기도 하고,
영겁(永劫)의 시간 동안 갇혀있던 나에게 수고했다고 한마디도 해주고 싶다.
긴 시간 동안 많이 울기도 했지만,
흘렸던 눈물만큼 내 감정이 성숙해졌으리라 믿고,
이젠 진짜 안녕을 고하고자 한다.
잘 지내.
곧 갈게.
조금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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